본문 바로가기

월명동 이야기

(28)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JMS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글 : JMS 정명석 목사님 저도 월명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필요성을 정말 알았다면, 평당 3000원씩 할 때 땅을 다 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월명동이 얼마나 귀한지 필요성을 못 느끼니, 섭리역사를 위해서 계속 다른 곳의 땅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감동을 주셨고, 늦게 월명동의 필요성을 깨닫고, 땅이 쌀 때 못 샀던 것을 후회하며 땅값이 올랐을 때 2~10배나 값을 더 주고 심정을 태우며 땅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15년 걸려서 샀습니다. 그리고 월명동을 성지 땅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월명동 땅값이 쌀 때 바로 필요성을 느꼈다면, 하루 만에 다 샀을 것입니다. 그..
[월명동 이야기] 편하게만 살지 말고 고생돼도 할 일을 해 놓고 편하게 살아라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편하게만 살지 말고 고생돼도 할 일을 해 놓고 편하게 살아라 글 : JMS 정명석 목사님 사람이 수고하고 열심을 내어 행할 것을 행한 후에 그제야 자동적으로 마음 놓고 편하게 살게 됩니다. 월명동도 고생하여 일해 놓지 않았을 때는 편하게 지내라고 말해도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고, 편하게 놀라고 말해도 편하게 놀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이때 월명동의 모습은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살 때입니다. 처음에 월명동은 잡초 밭이었고, 앉을 곳도 설 곳도 없었습니다. 고생과 수고를 안 하니 편한 장소도 없었고, 편하게 볼 것도 없었고, 편하게 이야기할 곳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 모두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자연성전을 구상하시고..
때가 되니, 돌 값도 준비된 값이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때가 되니, 돌 값도 준비된 값이었습니다 글 : 정명석 목사님 월명동 일을 하다가 돌이 없어서 중지했습니다. 월명동 호수 옆에 돌을 쌓을 곳이 조금 남아 있는데, 한국을 다 돌아다녀 봐도 돌이 없었습니다. 자료가 없으니, 구상대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녀 봐도 돌이 없다고 했는데, 저의 6개월 절식 기도가 끝나 갈 때 범석 목사에게 누가 전화를 걸어 왔답니다. 몇 년 전부터 모아 놓은 큰 돌이 있으니 와서 보고, 사 가라고 하는 전화였답니다. 가 보니 제가 1999년 이전에 한국에 있었을 때 가서 돌을 본 곳이었는데, 그때는 돌이 너무 비싸서 못 사고, 그곳의 땅만 밟고 그냥 돌아왔던 그곳이었답니다. 그때 본 돌들을 지금까지 모아 놓은 것입니다. 때가 되..
[월명동 이야기] 월명동 소나무도 손대서 관리해야 잘 큽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월명동 소나무도 손대서 관리해야 잘 큽니다 글 : 정명석 목사님 도 기도만 한다고 잘 크는 것이 아닙니다.손대서 관리해야 잘 큽니다. 때마다 가지를 쳐 주고, 해마다 나무 밑을 파서 나무 한 그루당 열 자루에서 스무 자루씩 퇴비를 해 줍니다. 다 합치면 수천 포대가 됩니다. 그래서 소나무들이 그렇게 컸지, 그냥 놔뒀으면 기본만 컸을 것입니다. 그렇게 퇴비를 하니, 여러분이 월명동 소나무들을 볼 때마다 해마다 눈에 띄게 컸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수련회 때마다 소나무들이 얼마나 더 컸는지, 자로 재 보고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저는 ‘퇴비를 안 한 다른 산의 소나무들’과 ‘월명동의 소나무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3년에 한 번씩 사람을 보내서 비교해 봤습니다. 15..
[월명동 이야기] 더 많이 일해야 표가 나고 표적이 일어납니다 [JMS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더 많이 일해야 표가 나고 표적이 일어납니다 글 : JMS 정명석 목사님 '월명동'도 '야심작'뿐 아니라 전체 돌 조경을 하여 돌을 많이 갖다 쌓고, 옆으로 쭉 길게 쌓고, 위로 높이 쌓았기에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것입니다. 만일 '야심작'만 돌 조경 작품을 해 놓았다면, 아름답지도 신비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많은 돌을 갖다가 수백 미터를 길게 쌓았고, 거기에다 높이 쌓았기 때문에 그리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것입니다. 도 한두 주 심었다면, 월명동 전체가 밀림같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도 한두 개 냈다면, 별로입니다. 소롯길(소로小路), 등산로, 산책로를 많이 닦아서 이 여러 가지로 길게 나 있으니, 수천 명씩 가도 동시에 산책하고 등산을 ..
[월명동 이야기] 월명동은 제가 지금 만들려고 하면 못 만듭니다 [JMS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월명동은 제가 지금 만들려고 하면 못 만듭니다 글 : JMS 정명석 목사님 [사진] 월명동 개발 중 모습 월명동은 제가 지금 만들려고 하면 못 만듭니다. 안 만듭니다. 왜일까요? 지금 만들기 시작하면, 만들다가 인생의 해가 넘어가서 캄캄해지기 때문입니다. 25년 전에 월명동의 땅들을 사며 만들 때, 그때 인생의 해가 쨍쨍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봐요. 서산에 해가 기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야. 김밥 싸 주고 소고기 안심으로 불고기 재료 싸 줄 테니까 먼 계곡에 가서 놀다 올래?” 하면, “해 지는데 어디 가요? 집에서 먹지요” 합니다. 이와 같이 저도 지금 월명동을 개발하라고 하면, 늦어서 못 합니다. 그 자리에서 김밥 먹을 시..
[월명동 이야기] 알고 보니 옛 생가 200평이 보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월명동 이야기] 알고 보니 옛 생가 200평이 보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글 : 정명석 목사님jms 저(정명석 목사님)는 조상들에게 받은 유산이 없었습니다. 집은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도 부족했고, 농사지을 논밭도 적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아무도 찾지 않는 월명동의 초가집 집터 200평’이었습니다. 아버지 때, 명당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그 집터를 보고 전설의 명당이라고 하며 고가(高價)에 팔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안 팔았다고 합니다. 그 전에도 동네 사람이 그곳을 30만 원에 팔라고 했는데, 안 팔았습니다. 저는 20대에 깊이 기도하면서 ‘나의 희망의 땅이 어디 있는가?’ 했는데, ‘초가집 뒤쪽 땅’을 팠더니 거기서 ‘금과 각종 보물과 청자기’가 나오는 꿈을 ..
만들기 전에는 모든 것이 화가 되었고, 만든 후에는 복이 되었습니다 [월명동 이야기] 만들기 전에는 모든 것이 화가 되었고, 만든 후에는 복이 되었습니다 글 : 정명석 목사님 월명동도 만들기 전에는 겨울에 눈이 오면 눈이 쌓여 다닐 수가 없으니, 해가 되고 고통이 되어 눈이 녹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비가 오면 논밭이 떠내려가고 집에 비가 새니 고통을 받으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햇볕이 쨍쨍 비추면, 너무 뜨겁고 더워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월명동을 만들어 놓으니, 때가 되어 눈이 와도 눈이 더 많이 와서 쌓이기를 간구했습니다. 눈이 쌓이면 스키를 타고, 썰매를 타고, 창조주와 함께 겨울 풍경을 감상하며 즐겼습니다. 비가 와도 먼지가 씻겨 내려가 돌 작품이 깨끗하고, 꽃이 피어 만발하고, 호수에 물이 차서 배를 띄우게 됐습니다. 또 비가 와도 을 만들어 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