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만이 걸어온 그 길

(31)
[나만이 걸어온 그 길] 31. 백마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백마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2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7주 이상 훈련을 받았는데, 마지막 코스는 도롱태를 타고 강 위로 하강하다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코스였다. 서로 앞에 안 타려고 했다. 교관은 “첫번째 정신 안 차리고 내 말을 듣는 대로 안 하면 죽는다. 내 명령은 생명이니 듣고 꼭 그대로 하라.”고 했다. 절벽 위에서 강인가 냇가인가 내려다보니 까마득했다. 훈련도 전투이니, 훈련 중에 죽으면 전투에서 총맞아 죽은 취급을 해주어 전사비가 나오니 개죽음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훈련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한번 타보고 또 타겠다고 사정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 무서운 코스를 또 타느냐고 물으니 너무 재미있어서 또 타본다는 사람이 90%이상이라고..
[나만이 걸어온 그 길] 30. 백마 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백마 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1 글 : 정명석 목사 논산 훈련소 전반기 6주 훈련과 후반기 금마에서 3주 훈련을 마치고, 5월초 논산 배출대를 거쳐 최전방 강원도 103보 보병으로 배출받았다. 처음에는 강원도로 배출된 것이 너무 싫었다. 서울이나 경기도면 얼마나 좋으랴! 강원도는 고생하는 곳이라 누구나 인상을 찌푸렸다. ‘못 배웠으니 최고 말단 지역으로 갈 수 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강원도 지역 중에서도 더 전방 철책선으로만 안 갔으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 좀 생각해달라고 마음으로 빌며 간구했다. 좀 편한 곳으로 배치되어 시간 좀 내어 성경이나 많이 읽고 싶었다. 수백 명이 줄줄이 서서 따불백을 둘러 메고 모두 좋은 장소로 배치받기를 기대하며..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9.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2 훈련 받으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일이 있다. 기합받은 일이다. M1 250m 사격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머리를 땅에 쳐박고 엎드려 양손을 등에 얹고 기합받는 일이다. 원산폭격이라는 무서운 기합이었다. 시간은 15~20분으로 기억된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 군화발로 채이고 했다. 이 기합은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이들 받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결심하고 사격에 대해 강의할 때 열심히 배우고 연구했다. 그 후 성적이 좋아져서 사격으로 기합받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전방에 배치되었을 때는 특등사수도 되어 훈장도 받았다. 그 후 월남에 파월되었을 때 저격수 임무를 수행했었다. 적이 나타나면 정확하게 총을 쏘는 일이었다. ..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8.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1966년 2월 14일 군입대 영장을 받고 1주일 후인 22일, 논산 연무대에 21살 나이로 육군에 입대했다. 22일 봄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새벽 5시에 부모님께 인사하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께서는 동네 마을 샘 어귀까지 바래다 주었다. “어머니 잘 갔다 오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인사 속에 섞여 나왔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내 몫까지 일을 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역시 나를 걱정하며 잘갔다 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또 마지막으로 군대 가서 돈벌어서 집에다 부쳐줄테니 받아서 잘 쓰시라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인원..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7.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2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랜턴을 머리 쪽에 대고 머리를 툭툭 치니 초긴장하여 고개를 드는데 눈만 반짝였다. 적을 보고 담대한 것이 전쟁터에서 군인의 기본 정신이기에 담대했다. 월남말로 “여 따이렝” 하며 손들라고 소리를 질렀다. 적이 손을 들고 쭈그리고 앉았다. 구둣발로 옆구리를 툭툭 차면서 겁을 주었다.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는 랜턴을 비추면서 몸수색을 하다, 약간 기미가 이상해 먼저 적의 양손을 뒤로 결박하여 꽁꽁 묶어버렸다. 적들은 사생결단하는 시간이라 별 모사를 다 쓴다. 다 죽은 척하다 자기 품속에 가지고 다니는 시퍼런 대검으로 쿡 쑤시는 수도 있다. 적을 잡아도 적을 죽일 때까지는 1:1일 때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6.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1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험난했다고 다들 말한다. 나 역시도 나의 삶의 길이 고달펐고 괴로웠으며 또 다시 걷고 싶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걸으려 해도 불가능한 험난한 삶의 길이었다. 한 때는 너무 어려워서 삶을 포기하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의식주 문제와 환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좌절이 문제였다. 따가운 태양 빛이 얼굴이 그을리도록 내리쬐고, 먹장구름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67년 4월, 나의 고향 하늘이 아니라 이국 땅의 전선의 하늘이다. 말로만 듣던 피비린내, 또 말로만 듣던 전투, 전쟁터, 말로만 듣던 총격전…이제는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그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신음과 고통, 그리고 삶의 소망, 생명의 가치..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5. 꿈과 현실 JMS 정명석 목사의 중 꿈과 현실 (꿈이 없는 자는 희망도 기쁨도 없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꿈과 현실이 있다. 하지만 꿈은 많아도 그것을 현실화 시키기는 쉽지 않다. 흔히 그 꿈들이 망상이나 환상에서 끝나고 마는 일이 너무 많다. 지금 내가 하는 꿈 이야기는 잠꼬대 꿈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싱싱한 소망과 생각의 꿈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꿈이 많고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꿈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며 살아보았지만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눈물의 산을 넘게 되고, 눈물의 강을 건너게 되었으며, 젊은 날 홀로 긴 인생의 밤길을 걸으니, 소쩍새의 슬픈 울음 소리가 내 노래가 되고, 내 삶도 그 새와 같이 되고 말았다. 그..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4. 내 생각과 다른 하늘의 생각 JMS 정명석 목사의 중 내 생각과 다른 하늘의 생각 칠흑같이 캄캄한 밤길이었다. 새벽 2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성황당 고갯길을 하늘과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의 발길이 아직도 끊이지 않은 셈이다. 길의 좌우에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심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노방전도를 하고 오는 길은 너무나도 벅찬 발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 고향 성황당 고개를 올라오면 항상 나는 한잠 자고픈 마음이 든다. 아마 내 집이 시야에 들어오니 포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캄캄한 끝에 빗줄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산도 없는데 어둠 속에 비가 꽤 쏟아졌다. 다 왔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빨리 뛰고 싶지만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늘상 다니던 길이라 짐작으로 논두렁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