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속에서 느낀 예수님의 사랑
저는 1945년 음력 2월 3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151번지에서 6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산골짝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농사를 지으려해도 농토가 없었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지독히도 가난하여 배고픔에 시달리던 때에 장형(長兄)의 인도로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을 매우 좋아하여 뒷산에 올라 기도를 하며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가정에 있는 유일한 책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한 기도와 수도생활을 통해 성경을 점차 깊이있게 깨달았습니다.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기도와 수도생활을 통해 성경을 깊이있게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해야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아무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미친 사람도 집에 데려와 씻겨주고 같이 재워주고 가족이 먹는 밥상에 앉혀 같이 먹었습니다. 실천 속에서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 총과 칼을 내던지고 주님의 사랑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백마부대 소속으로 월남에 파병되어 전쟁의 참혹함을 보았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전투 속에서도 한시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임을 예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하늘을 쳐다보고 ‘만일 내 생명이 죽지 않고 살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겠다.’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저는 절체절명의 전투 속에서도 한시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또 읽었습니다.
1차 파월 후 무사히 귀국하자마자 재파월되어 전역하기까지 수백 번의 매복작전과 산악수색자전과 많은 전투를 하며 수십 번의 꼭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전쟁의 뼈저린 고통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보호하사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십 차례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 극적으로 살려주셔서 생명의 귀중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베트남 참전을 통해 총과 칼을 내던져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트남 참전을 통해 총과 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고 총과 칼을 내던져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옆에서 늘 예수님이 나에게 깨달음의 감동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너희끼리는 적이지만 나에게는 적이 아니다.” 하시며 원수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월남에서 살아 돌아오자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대둔산과 다리골, 감람산 등등을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수도생활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성경의 깊은 비밀을 새롭게 풀어주셨습니다. 새로운 진리를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1978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떠났습니다.
말보다는 실천이다
「말보다는 실천이다.」하는 내 인생의 좌우명처럼 삶으로 복음 전파하였고 새로운 진리에 굶주렸던 캠퍼스에 복음의 불을 붙였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몰라 하나님을 오해하고 불신하며 인생의 길을 못 찾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시대 말씀을 전하며 참다운 인간, 참다운 신앙, 참다운 구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제시한 새로운 진리의 불길은 국내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 50여 개국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랑과 믿음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성경은 경전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도 이루어지는 기적의 메시지이며 삶의 지침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오늘도 세계에 전파되고 있으며 저는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 삽화 / 김덕민, 사진 / 스타사진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