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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소개/정명석목사의삶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8.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JMS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그 길> 중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1966년 2월 14일 군입대 영장을 받고 1주일 후인 22일, 논산 연무대에 21살 나이로 육군에 입대했다. 22일 봄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새벽 5시에 부모님께 인사하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께서는 동네 마을 샘 어귀까지 바래다 주었다. “어머니 잘 갔다 오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인사 속에 섞여 나왔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내 몫까지 일을 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역시 나를 걱정하며 잘갔다 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또 마지막으로 군대 가서 돈벌어서 집에다 부쳐줄테니 받아서 잘 쓰시라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인원 점검 후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 입고, 7주일 동안 정신교육을 받으며 대기하다 논산 훈련소 26연대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았다.

집에서 가지고 온 포켓용 신구약 합본 성경은 가로 10cm, 세로 6cm의 크기쯤 된다. 지휘관이 쳐다보는 강한 눈을 피해 틈만 있으면 성경을 읽었다. 1시간의 심한 훈련이 끝나면 10분간 휴식이 있었다. 이 때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라 대개 담배들을 피우고 누워 기지개들을 켜며 피곤한 몸들을 푸는 시간을 갖거나, 어떤 병사들은 끼리끼리 낯은 설지만 고향을 물으며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그 순간 나에게 성경은 너무도 소중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나 외에 그 아무도 없었다. 훈련을 하더라도 쉬는 시간에 성경 읽을 것을 생각하니 훈련이 고달픈 것도 몰랐다. 훈련하고 취침막사에 돌아오면 점호가 있었고, 밤 9시에 점호가 끝나면 취침에 들어간다. 그러면 불침번만 남겨놓고, 소등불만 희미하게 켜놓고 모두 잔다. 취침 시간에는 모두 자는 것이 군 단체 생활의 방침이라 책을 읽거나 각자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만일에 개인 행동을 하게 되면 불침번 근무자의 제제를 받게 된다.

그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자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20분쯤 누워 있다가 모두 고달퍼 잠이 들 때면 그대로 엎어져서 성경을 읽었다. 새벽 1시까지 읽으면 더 견딜 수가 없어 나도 몰래 성경책에 침을 흘리며 잠이 든다.

그렇게 피곤한 잠만 자고 새벽에 그대로 눈을 떠 또 성경을 읽었다. 
한 번은 불침번들이 무슨 책을 그리 재미있게 읽느냐고, 다 읽은 다음 자기에게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성경책을 보았는데도 성경책인 줄을 전혀 모르는 것을 보니 교회를 하루도 안 다녔던 일자무식의 병사였다. 내가 불침번 근무를 서는 때는 성경만을 읽는 시간이었는데 1시간씩 근무를 섰다. 어느 때는 성경을 읽으려고 다음다음 사람까지 깨우지 않고 혼자 독점하며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날 자기 불침번 안깨웠다고 너무 좋아하며 잠 잘 잤다고 고마워했다. 으레 내 불침번 때는 3시간씩 혹은 2시간씩을 연속 근무하면서 성경을 읽었다. 내 다음 병사는 나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성경 이야기도 해주며 전도도 했다. 그래서 군교회도 같이 나가기도 했다.

일요일이면 교회 나가는 사람만 제외하고 부대 전체가 작업을 했다.

화장실 퍼내는 일과 운동장에 풀매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일하기 싫어서 신앙생활도 안하던 병사들이 교회 간다고 군종 인솔자가 오면 20~30명씩 따라갔다. 이를 본 지휘관들은 화가 나서 모두 믿을 수가 없다고 일절 교회에 못나가게 방침을 세워 버렸다. 아닌게 아니라 일요일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교회를 보내지 않았다. 일요일 날 일하기 싫어서 교회로 피신가는 가짜 신앙인들 때문에 정작 교회 다니는 나까지 못 가게 된 것이다. 나도 할 수 없이 작업장에 끌려가 종일 풀매는 일을 했다. 다음 일요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교회 다니는 병사들은 우리 부대에서는 7명뿐이었다.

한 주간 동안 훈련을 받고, 또 일요일이 돌아왔다.
나는 아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일찍 군교회로 빠져나가 버렸다. 아침 주일예배를 드리고 또 기다려서 아예 일요일 저녁예배까지 드리고 가기로 했다. 공백 시간에 성경을 읽었다. 하루가 천국 시간같이 너무나 빨리 가버렸다. 금방 저녁예배 시간이 되어서 예배를 드렸다. 마지막 주기도문을 하며 예배를 폐하려는 순간에 누가 목덜미를 잡으면서 끌어 잡아당겼다. 주기도문하다 중간에 눈을 떠보니 누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니, 기도하는데 기도나 끝나거든 이야기 하라.”고 했다. 그러나 무조건 잡아당겨 애처롭게도 그 짧게 남은 주기도문을 못하고 말았다. 밖에 끌려 나와 보니 나의 중대 소속 선임하사였다. 다짜고짜로 왜 탈영했느냐고 다그친다. 누가 탈영했느냐고 물으니 “너, 탈영했다고 부대에서 모두 찾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다. “무조건 교회에 안 보내 줘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교회에 왔을 뿐이지 훈련소 철조망 밖에 나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온 지도자들이 모두 이 광경을 보고는, “예배드리러 다니는데 무슨 탈영이냐?”고 한마디씩 했는데 그 중 한 장교는 다음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 잘 좀 해주라고 했다.

소속 부대에 돌아왔다. 부대 전체가 각 내무반에서 기합들을 받고 있었다. 내가 속한 내무반에서도 차렷 자세로 기합을 받으며 훈시를 듣고 있었다. 나를 끌고 들어가 내무반 중간에 세워 놓고 중대 서무계와 선임자가 뺨을 때리며 군화발로 차고 한참을 정신없이 때렸다. 기합 받는 자들이 “저 새끼 더 때려야 된다.” 라고 소리를 쳐댔다. 코피가 나고 볼이 화닥거리며 앞정갱이는 쪼인트를 당해서 너무 아팠다. 그러면서 다시는 교회에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안 갈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다음에는 이야기를 꼭 하고 가겠다고 했다. 또 간다고 하니 또 때려댔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부대 교인들은 일요일이면 다 교회에 보내는데 왜 우리 부대만 안 보내느냐고 진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파악해서 보내 줘야 원칙이 아니냐.”고 했다.

나의 기합은 끝났다. 교회를 갔기 때문에 책망만 간단히 듣고 끝날 줄 알았지 이렇게 심하게 때릴 줄은 미처 몰랐다. ‘아, 군대란 이렇구나.’ 또 하나 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합이 끝났을 때 내무반 훈련 동료들은 내 맞은 것을 안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일부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중에 어느 사람은 “너, 군대 들어오기 전에 어느 교파 어느 교회 다녔느냐?”고 묻는다. 장로교, 석막교회에 다녔다고 하니 석막리가 어디 붙어있느냐고 한다. 금산이라고 했다. 자기는 영락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같이 알고 지내자고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엔 중대장실에 있는 서무계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갔다.

어제 나를 때리고 혼을 낸 중대 인원을 총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서무계다. “어제는 군법칙상 손을 댄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다.” 서무계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군에 오기 전에 어느 교회에 다녔느냐고 묻는다. 석막 장로교회라고 시골에서 다녔다고 했다.

직책은 무엇이었느냐고 하기에 주일학교 부장직도 하고 청년부도 맡아 일을 하다 군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실상 자기도 교인이라고 말하면서 임무 때문에 교회에 못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인이라고 하니 참 반가웠다. 그는 다음주 부터는 우리 중대 자체 군종병사가 되어 진짜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확실하게 파악해서 일요일에 교회로 인솔해 갔다가 같이 예배 드리고, 인원 전체가 아무 이상 없이 다 자기에게 보고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한테 이야기하라고 했다. 옆의 직무 책상에 앉아있던 중대장이 “야, 김병장. 서무계 끗발 좋구먼.”하고 웃는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면서 “소원이 이루어졌구나.”했다.

그 날부터 중대 전 훈련병들 중에서 진짜 교회 나가는 사람만 선별해서 일요일날이면 교회로 인솔하는 중대 자체내 군종 인솔병사가 된 셈이었다. 그 다음 일요일에 교회 갈 사람을 찾으니까 몇 명 안 나왔다. 그들은 내가 교회 가다가 맞은 것을 보고 모두 두려웠던 모양이다. 교회 가겠다고 나온 병사는 사회에 있을 때 진짜 교회를 다닌 사람인지 하나하나 파악해 보았다. 주기도문은 모두 기본이니까 고린도 전서 13장을 암송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암송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진짜로 교회 다닌 것이 아니라고 하니 어느 사람은 영락교회 나가다 왔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서울의 이름있는 교회 이름을 댔다. “아무리 큰 교회에 다녔으면 뭘하느냐? 잘 믿었어야 되지.”했다. 그 날은 전 중대내에서 7명만 인솔해서 교회를 갔다 왔다. 갔다 와서 서무계에게 보고하니까 “내가 보니 진짜들만 갔다 온 것 같다.”고 하면서 이 사람들을 일요일마다 인솔하라고 했다. 그리고 “더 파악을 해서 정말 교인들이면 네가 알아서 데리고 나가도록 해라. 네게 맡긴다.”고 했다. 그 다음 주부터는 교회 나갔던 자들이 자기 내무반의 교인들을 자세히 파악하여 같이 가도록 했다. 그 다음 일요일에는 20여 명을 데리고 나갔다. 그랬더니 남은 사람들도 모두 평소에 교회에 안 다녔던 것을 후회하면서 지금부터라도 교회에 나갈 수 없느냐고들 했다. 그 중에서 정말 다니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데리고 나갔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훈련소에서 교회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