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건축의 새 길을 내다
사람들은 늘 길을 떠난다. 새로운 곳에 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매년 연휴 때마다 인천공항이 역대 최다 이용객 기록을 갈아 치우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길을 떠난다. 특히 현대까지 남아있는 고 건축물들에는 우리가 아는 상식을 벗어난 사연과 사람, 역사가 많이 숨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지켜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매번 발길을 옮긴다.
필자가 건축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건축에 담겨있는 건축가의 정신 때문이다. 고대에는 신을 중심으로 한 사상 때문에 주로 신전 건축 양식이 많았다. 서양건축사의 대부분이 기독교교회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간중심주의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신을 위해 건축하지 않았다. 특히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전람회장, 사무소 건축 등이 주를 이루어 구조, 기능, 미의 측면을 강조한 건축은 인간을 보다 편하게, 가깝게, 세련된 건축의 중심에 놓았다.
지금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만지고 살아가는 모든 건축물들이 이에 해당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자연과 친화적 건축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자연을 깎고, 버리고 인공물들을 건축하던 시대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공감하는 건축으로 시선을 향하는 것이다.
건축에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건축물 그 자체로만이 아니라 역사를 따라 쉼 없이 변하기도 하고, 한 나라의 랜드마크가 되어 사람들에게 사연과 추억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르네상스의 흐름을 따라 인간중심으로 살고 있다.
주로 서양의 기독교교회 건축물에 익숙한 필자를 잘 아는 지인이 자신만만하게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 건축물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심지어 국내에 있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따라 나선 길에 필자는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만나게 된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인을 따라 충청남도의 한 곳으로 갔다. 그곳은 종교계에서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라 불리며 익히 알려진 곳으로 ‘월명동’이라고 한다. 대둔산, 인대산, 천둥산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지형으로 8개의 산맥이 맞닿은 곳이다.
월명동의 옛 명칭은 ‘달밝골’로 달이 밝은 골짜기를 뜻한다고 한다. 이름처럼 달이 밝게 보일 정도로 오지이며 고지대였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이제껏 보지 못한엄청나게 큰 돌들이 있었다.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종교 건축물이니 당연히 성당이나 교회 같은 건물을 예상했던 필자로서는 첫 인상부터 가히 충격이었다.
그곳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건물의 천장과 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 감싸 안듯이 동그랗게 둘러싸인 공간…,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었다.
▲ 아름다운 잔디밭 전경
근대 교회건축의 선구자인 루돌프 슈바르쯔(Rudolf Schwarz)는 '산은 벽이요, 언덕은 출입구, 벌판은 바닥, 개울은 길'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표현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존재하리하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던 필자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전, 즉 하나님의 전, 자연성전입니다. 저희는 하나님을 건물 안에 모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곳의 건축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상을 받아 건설되고 있습니다.”
종교건축은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필요한 공간의 충족으로 교회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하나님을 위한 건축으로의 교회는 건축가들의 심혈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다른 건축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소위 알고 있는 교회 건축물의 역사는 306년 그리스의 테살로니카 성전을 시작으로 333년 이탈리아의 성 베드로 성당, 현대 스페인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건물 속에서 신을 만나고 모셨다.
그 중 가장 큰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 중앙 통로 길이가 186미터, 폭 140미터, 제단에서 돔까지 46미터 그리고 바닥에서 종탑까지가 137미터 규모다.
이에 비해 자연성전은 입구의 문턱바위에서부터 시작해 믿음 산, 동그레 산, 전망대, 조산, 서낭당, 그 전체가 성전을 이루며 크기는 약 5만 평 정도, 즉 사각으로 대충 계산해도 한 면이 1,300미터 정도 된다.
동그랗게 감싸는 지형이니 1,300미터짜리 트랙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천장벽화가 있고, 그 높이가 45m라고 하지만 자연성전은 천장이 하늘이니 두 말할 나위가 없다.
▲ 전설이 담겨있는 풍수
사방 벽에 세로로 세워져 있는 돌 조경들은 벽을 이루는 벽화라고 했으며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님의 의자가 된다고 했다. 돌 조경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나타내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길을 따라 나서면 오직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흙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돌들의 성전, 그것도 천장이 없고 벽화로 둘러싸여 돌, 흙, 물, 나무가 조화를 이뤄 신을 모신다는 곳.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다시 신(神) 중심주의가 아닌가!
필자는 정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현대에서 아직도 신을 신으로 보고, 신을 신으로 모시고, 신을 신으로 섬기는 곳이 이 지구에 존재한단 말인가!
고대에는 신을 두려워했고, 중세에는 신과 인간이 대립했고, 근대로부터 현대에는 인간이 신이 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신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오직 신을 위해 전을 짓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 신비로운 연못
이곳은 1989년부터 건축 중이라고 했다. 모든 과정을 지휘하며 직접 건축하고 있는 정명석 총재가 기도 중에 “돌로 이같이 쌓아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신이 보여주신 모습대로 건축하고 있다고 했다.
경이로움까지 드는 그곳에 대해 한 마디로 설명해 달라 하니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곳”이라 했다. 웅장함은 큰 돌로 쌓아서이고, 신비함은 그 돌들을 세로로 쌓은 것이고,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돌을 세워 쌓은 곳은 없다고 했다. 그것도 이렇게 큰 돌을 세워서 쌓은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필자도 많은 건축물을 봐왔지만 돌을 세워서 쌓은 돌 조경들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돌과 흙, 물과 수많은 나무가 어우러져 하늘만 바라보는 곳은 필자를 마치 전설 속 무릉도원에 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벌써 건설을 한지 27년이 지났는데 역사 속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그러했듯이, 더욱이 큰 돌들을 세워서 쌓는 이 건축 기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위해 죽었을까?
중국의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라 불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슬람 건축의 백미 타지마할, 유럽의 성당들, 우리가 줄을 서서 찾아가는 모든 유적지들은 어쩌면 피의 건축물들이다. 그 피들이 그 나라의 후대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삼위의 시대 야심작 작품
그런데 월명동 자연성전에서는 단 한명의 죽음도 없었다고 한다. 자칫 움직임이 둔하기만 해도 대형사고로 이어져 죽을 수 있는 크기의 돌들임에도 이 돌들을 쌓기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눈빛에서 거짓을 찾기는 어려웠다. 필자가 이 시대에 신본주의가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건설을 지켜보며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신의 전을 바라보면서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연성전 돌 조경의 백미 야심작에 ‘이 모든 구상은 하나님, 감동은 성령님, 보호는 예수 그리스도, 기술 실천은 나와 제자들’이라고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 조경의 중심에는 ‘생명을 사랑하라’고 새겨진 돌이 서 있었다. 과연 신의 거하심, 신의 보호가 동(動)할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
지구 세상에 신본주의가 다시 시작된 곳이 있다면 이곳 월명동 자연성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 또 수백 년이 흐르면 가톨릭의 어느 성당처럼, 이슬람의 어느 성전처럼, 이곳에도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어 지금 필자가 느낀 감동과 충격을 받을 것 같다.
▲ 2017 감사 행사
기사원문 : http://www.urinews.org/86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