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내용은 <나의 푸른 날 베트남 전쟁터에서> 최희남 저의 389쪽에 나온 내용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적을 많이 죽여야 훈장이 나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하고도 훈장을 탔다면 전쟁이라는 용어를 달리 써야 옳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쟁이 한창 벌어진 그 현장에서 적을 죽이지 않고도 많은 공적을 세웠다고 말하면 그것 자체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함께 근무했을 당시 4개월 남짓한 기간에 28연대 1소대 2분대에서 살상 하지 않고도 훈장을 탄 병사가 있었다. 바로 홍길동 작전에서 월맹군 95연대장 당번병을 사로잡은 공로(功勞)를 인정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던 것이었다 - 나중에 전우회에서 만난 당사자에게 들은 얘기로 화랑무공훈장 2개, 인헌무공훈장 2개, 베트남 참전훈장 2개, 채명신 주월사령관으로부터 표창장 1개를 받았다고 했다. 이 내용은 위생병으로 함께 근무하다 사단본부로 전출 간 강성구 전우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귀국 후 오랜만에 만난 전우들 사이에 들리는 얘기로는 그 병사가 훈장을 탔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 월맹군 95연대 당번병을 포로로 잡았던 그 병사 또한 '하나님께서 생명을 사랑하라!'는 그 큰 교훈을 주신 것과 죽음터 가운데서 살아돌아오게 하신 것만으로도 표적을 삼기에 충분하다,며 받은 훈장을 전부 찢어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훈장을 탔으면 당연히 국방부 기록에 남아있어야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어인이 벙벙하여 좌중에게 물었다.
"그것은 말입니다. 다 변칙적으로 다른 사람이 가로챘기에 그런 현상이 생긴 겁니다. 이를테면 말입니다. 훈장은 전투현장에 있었던 실제로 전과를 올린 병사에게 주고, 기록은 얌체같이 행정부 쪽에 아첨하는 그 누군가의 이름으로 올리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몇년 전에 만났을 때, 당시 행정병으로는 근무했던 정흥섭 전우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속으로 놀랐다. 어떤 사람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그 뒤에서 가만히 앉아 종이에 몇 자 적는 자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좌지우지 했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기까지 했다. 그러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바는 없고 그에 관한 어떤 증거물도 갖고 있지 않으며 심증만으로 그랬다는 것을 여기 적어둔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 벌어진 현장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것만도 감사할 일이지', 라고 생각하며 화를 가라앉혔던 적이 있다. 아무리 정비가 잘 된 군대라 할지라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나 기타 여러 환경 가운데서 정흥섭 전우가 말한 부분은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또는 필자가 월남어교육대를 수료했는데도 그당시 행정기록의 부주의로 누락되었듯이 훈장수여 사실기록이 누락되었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