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수도생활 가운데 개구리를 통해서도 깨우쳐 주고 힘을 주었다.*¹
“인생의 길은 반드시 그 가야 할 길이 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사나?
하나님이 이렇게 살라는 프로그램을 주면, 그 길을 살 때 이상적인 삶이 오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비료를 담는 두꺼운 비닐 포대가 있습니다. 개구리를 반 포대 잡아 놓고서 이렇게 세워 놨죠.
그런데 밤에 졸려서 새벽 1시나 2시 즈음에 냉수 목욕을 하러 갔는데, 냉수 목욕을 다 할 때까지도 비료 포대 안에서 뽀스락뽀스락거리기에 플래시를 비춰 보며 가만히 쳐다보니까, 잡아다 넣은 개구리 중 다른 놈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모른 채 밖으로 나오는 것을 다 포기하고 자는데, 그중 한 마리가 밖으로 나오려고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그런데 포대가 너무 높기 때문에 뛰어 봤자 반도 올라올 수가 없었고, 또 포대 안이 미끄러우니까 개구리가 뛰어도 내려오고, 뛰어도 내려오고, 개구리가 버르적거리는 거여. 딴 놈들은 다 자는데 한 마리가 뛰더라고. 그러나 뛰어 봤자 올라올 수가 없어요. 평생 뛰어도 못 넘어간다고 느꼈어요. 그게 바로 다른 세계로 벗어나려고 하는 그 광경이여.
‘이 개구리는 보통 개구리가 아니고, 삶에 대한 애착심이 심히 강한 개구리다.’
그걸 보고 난 그냥 들어왔을까요?
내 자신을 거기다 포함을 시켰는데,
‘내 처지가 개구리 입장과 같구나. 네 꼴도 내 꼴과 똑같다. 나도 이렇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더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인데, 딴 놈들은 다 자요. 영적으로 느낄 때 다 자고 있어요. 다 포기하고 “에라!” 하고 자 버렸는데, 너도 3시까지 여러 수천 번 발버둥 쳤구나. 나 혼자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개구리가 뛰는 모습과 똑같아. 저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개구리 신세와, 살아 보려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발버둥 치며 냉수 목욕을 하는 내 입장이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개구리는 다음 날 아침이면 전부 씻어서 솥에 넣고 삶아 먹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튼 참으로 지혜 있는 일이었습니다. 벗어나려고 한 몸부림이.
그 한 마리를 딱 쥐었죠. 딱 내놓았어요.
그 한 마리를 딱 쥐고서 바로 포대 밖에 내놓았더니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다음 날 아침에 애들이 다시 잡아서 넣을까 봐 빨리 뛰어 도망가라고, 멀리 배웅을 해 줬습니다.
본인은 알까요? 내가 내놓은 것? 모른다구! 하나님이 깨닫게 하는 마음을 주기 전까지는 못 깨닫는다고 나는 생각해!
그날 아침에 그걸 깨닫고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삶에 대한 희망과 소망을 얻었어.
‘하나님이 날 이렇게 보셨다! 보시고 개구리 내놓듯 내놓았다! 틀림없어! 맞아!’
‘나의 한량없는 발버둥 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손길을 내밀어 주셨어. 나는 깨달아. 개구리는 나를 못 깨달았지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개구리만 생명의 길을 찾았습니다. 자고 있던 나머지 개구리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영적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었다. 나는 살았다. 사람이라면 또 끄집어내야 되지 않겠냐?’는 이 원리를 깨닫고, 그 후에 기도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 중에도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들도 ‘아, 맞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함께해 주셨어!’라고 많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도입니다. 뛴 보람이 있고, 밤잠을 못 자고 몸부림을 친 보람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개구리를 통해서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바로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정명석 목사의 1990년 4월 25일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