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오늘도 말과 행실이 어긋나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 고 이 새벽에 말씀 하셨나이다. 하늘 아버지와 이웃의 심정 답답함을 깨달으라고 심정의 세계를 가르쳐 주셨나이다. 내가 더 바쁘고 활동이 전보다 더함은, 내가 다스려야 할 주관권이 보다 더 커지는 연고로소이다. 이것은 주께서 주신 큰 분복이며, 모든 자들에게 희망과 소망임을 깨닫나이다. 만일 내 할 일과 활동이 점점 작아지고 줄어든다면 내 소망과 분복이 그만큼 줄어버린 까닭이나이다.
내 육신이 주야에 쑤시고 또 육신의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이에 더욱 주께서 치료하심이 컸고 위로자가 더욱 많았나이다. 내 고달픔과 고통을 나홀로 겪은 적이 있나 생각해 봐도 손넓이만큼도 찾을 길이 없나이다. 주께서 그 어느 좋은 것도 나에게 아끼지를 아니하셨나이다.
고로 내게 환란과 고통과 핍박이 올지라도, 순간적으로 주를 잊은 적이 있을지라도 중심에 주를 잊은 어리석은 적은 없었나이다. 다윗왕의 일천궁녀가 시중들면서 양손을 들고 키질하며 오라 할지라도, 내가 주를 떠나 홀로 갈 수 없고 또 간다해도 존재할 수가 없어 이제는 갈 마음도 없나이다.
오직 주만 의지하고 오직 주만 생명시하고 주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을 대신해 동서 남북에서 나를 좇아 행하며 내 손과 발이 되어주나이다. 주께서는 모든 인간사의 외식과 형식을 절대 거부하시며, 그런자들을 가까이 하기 싫어하시며 어디를 가든지 충성과 진실을 예배로 받으시는 줄을 알았나이다. 그런 자들을 찾고 찾아달라고 하나이다.
특히 주께서는 성서의 말씀을 외식과 형식에 치우쳐 장수만 많이 채우지 말라고 하셨나이다. 그런자들에게는 영혼의 양식을 끊어 기근을 당하게 함을 깨달았나이다. 진실로 읽고 상고하며 기도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도 없고 그 숨긴 말씀의 보화를 발견할 수도 없음을 깨달았나이다.
또한 그 말씀을 행하고 전할 때, 더욱 내 손발이 되고 내 목청이 되어주며 듣는자들로 하여금 그 말씀이 생명이 되어 영혼을 윤택케 하였나이다. 가물어 메마른 이 땅에 단비를 내려 신선한 샘물 대주어 요단강물 굽이쳐 흘러 거기, 양과 이리와 사자와 그 새끼들이며 마른 소들을 살찌게 하여 서로 상함도 해됨도 없게 하였나이다.
그랬더니 이를 보고 바산의 힘센 황소들과 들개들이 짖어대며 물어뜯고 삼키며 제밥인양 생각하니, 주께서 노를 발하여 하늘사자들을 보내고 포수를 풀어 사냥케 하였나이다. 그 소들과 들개들의 짖는 소리가 점점 작아져 결국 꼬리를 감추나이다. 주께서는, 거짓 맹세하는 자들을 오늘도 가까이 하기를 꺼려 하오니 누가 그들을 변호하오리까.
주께서는 소산을 다 팔고 생명까지 다 바쳐 이 동산의 생명들을 사셨나이다. “너는 일편단심 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돌보아라” 하셨으니 낸들 소산과 생명을 바치지 않고 어찌 감당 할 수 있겠나이까. 평생에 내 갈 길이, 온인류가 갈 길이 이 길 뿐이오니 이 일을 알고 따라 행하는 자들을 나와 같게 하옵소서. 오늘도 이 동산으로 숨가쁜 발길을 옮기오니 주께서 힘과 능력과 지혜와 은혜를 더하옵소서. 아멘.
1984년 2월 23일
불광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