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그 길> 중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월남 나트랑항을 거쳐 배치된 곳은 캄남 지역이었다.
월남이 얼마나 더운지 한국에서 교육받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6월 폭염을 이기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지만 실상 월남 땅을 밟고 생활해 보니 정말 더웠다. 병사 1/3이상이 열병 현상을 겪게 되고, 모두 고통들을 받았다. 이렇게 덥고 뜨거운 기후에 견디지 못하여 적을 잡기는 커녕 미리 죽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월남 기후를 직접 이기고, 체질화하는 기간으로 한동안 후방인 그 지역에서 지냈다. 후방이지만 긴장된 마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마찬가지였다. 얼마 안 있으면 최전방으로 간다기에 더욱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특히 거목 위에다 만든 관망대 초소 근무를 많이 했다. 관망대 초소 근무는 단독 근무이기 때문에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높은 나무 위의 초소에 들어가 있으면 보는 사람들도 없고, 또 보다 안전한 지역이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상고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21세 나이인 그 때에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성경을 집중적으로 보게 한 것으로 기억되고 깨달아진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게 하고, 진정한 신의 존재를 성령의 감동을 받아 깨닫게 했다. 그 때는 해가 뜨면 해가 지는 것을 몰랐을 정도였다. 내가 월남에 와 있는 것인지, 내 고향 명산 속에 묻혀 기도생활을 하는지, 성경을 보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때의 나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이 시대를 위해 열심히 단련시키고 있었다고 깨달아진다.
월남에 온 지 한 달도 못 되었을 때였는데 모두 귀국 준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벌써부터 한국에 돌아갈 때 가지고 갈 것을 챙기고들 있었다. 특별한 것을 사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먹던 씨레숀에 커피, 코코아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커피나 코코아, 담배 등은 매일 먹고도 남았다. 다들 너무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먹고 남은 것이지만 아끼고 모아서 고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 모습들을 쳐다보는 순간, ‘나는 이 전쟁터에서 이 몸뚱이만 살아가는 것만 해도 소원이 없다’ 고 생각했다.
뜨거운 하늘, 파란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면서 ‘하나님, 나는 커피, 코코아, 기타 전자제품이나 미제, 일제를 모두 못 가지고 고국에 빈손으로 가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은 살아서 부모님께 선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내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내 가슴을 적셨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 같기도 하고, 깨달음 같기도 한 뜨겁고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가치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답을 주셨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 말씀이 있는 성경을 보았다(막 8:36). 생명의 가치성을 깊고도 깊게 깨달은 날이었다. 생명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도 깨닫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서로 안 죽으려고 총구를 대고 쏴야 되는데 아, 나는 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남의 생명을 죽여야 되나?’ 전투를 앞두고 앞날이 캄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하나님께 맡기면서 월남에서의 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나는 아무 걱정도 염려도 안 되었다. 날씨가 뜨거운 것이 문제였지만 그것도 참을 만했다. 시골 산골짝에서 보리타작하던 땡볕 삶의 인생 훈련에서 이미 나는 겪은 것이라서 모두 견딜 수 있었다. 전쟁의 실전 속에 모두들 부모를 그리워하고, 애인을 그리워하면서 위로를 삼았지만 내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위로가 되었다. 인간 스스로가 신(神)을 찾아가는 것에 따라서 신은 역사하신다는 것을 나는 더욱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가 관망대 초소에서 장거리 망원경으로 보면 이것 저것이 다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낮부터 철조망 밖에 나가 같은 중대 전우들이 월남 아가씨들하고 허허벌판에서 연애하며 짓뒹구는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 낮에도 저러한데 밤에는 오죽하랴 싶었다.
월남 도착할 때부터 월남 여자에 눈을 뜬 자들은 한국으로 올 때까지 그랬다. 환경과 처지가 모두 그러했다. 나는 처음에 망원경으로 병사들이 철조망 밖의 여자들과 어울리며 숲 속 야자수 그늘 아래서 노는 것을 보고 ‘아니, 월남 여자들이 저렇게도 좋은가? 해가 지는 줄을 모르네. 나는 저렇게 하라고 내 좋아하는 떡을 매일 주어도 못할 짓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저성만 알고 이성은 전혀 모를 때였다. 오직 하나님이 지켜주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한국 파월 장병들이 수만 명의 2세들을 태어나게 한 것인데 지금은 이 사실을 모두 알게되고 말았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월남 전쟁으로 인하여 태어난 한국인 2세들이 3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하니 엄청나다. 만일 나까지 그랬다면 그 수가 더했겠지만 하나님은 오늘의 내가 되도록 불철주야로 지켜 주셨던 것을 생각하니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도 말리기 힘든 이성이기에 본인 스스로가 지켜 행하여야 될 문제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의한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 목적을 깨트린 삶은 보람과 가치를 상실케 되는 법이다. 참고 견디면, 아니 하나님의 일에 빠져 일하다 보면 하나님이 때에 따라 주시는 성서의 사랑의 뜻을 펴야될 축복 결혼의 때가 오게 된다.
이성이 전부가 아니다. 여자가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된다. 신령한 눈을 떠서 하나님을 신랑으로 삼고, 우리는 신부로서 그를 사랑하는 이상적인 최고의 삶을, 지치지 않고 질리지도 않고 허무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