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그 길> 중
백마 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1
글 : 정명석 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논산 훈련소 전반기 6주 훈련과 후반기 금마에서 3주 훈련을 마치고, 5월초 논산 배출대를 거쳐 최전방 강원도 103보 보병으로 배출받았다. 처음에는 강원도로 배출된 것이 너무 싫었다. 서울이나 경기도면 얼마나 좋으랴! 강원도는 고생하는 곳이라 누구나 인상을 찌푸렸다. ‘못 배웠으니 최고 말단 지역으로 갈 수 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강원도 지역 중에서도 더 전방 철책선으로만 안 갔으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 좀 생각해달라고 마음으로 빌며 간구했다. 좀 편한 곳으로 배치되어 시간 좀 내어 성경이나 많이 읽고 싶었다. 수백 명이 줄줄이 서서 따불백을 둘러 메고 모두 좋은 장소로 배치받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들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몇 명의 특수병과들만 101보로 배치받고 나머지는 모두 103보 최전방으로 배치되고 말았다.
얼마간 군 이동 수송차를 타고 전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강원도 그 어느 지역인지도 몰랐지만, 그 후 알고 보니 철책선에 주둔한 부대였다. 북한이 훤히 보이고, 북한 방송까지 들려 소름이 끼쳤다. 강원도 땅을 난생 처음 밟게 되고 또 북한 땅도 처음 구경하게 되고 이름으로만 듣던 곳을 전방 155마일에서 보게 되니 겁도 나고 정신이 번쩍 차려지기도 했다.
도착하던 첫날, 부대 마크를 받게 되었다.
흰 백마가 뛰는 모습의 마크였다. 백마 부대가 유명한 부대라고 선배 지도자들이 선전하며 강조를 하여, 부대의 자부심을 새로 온 신병들에게 교육시켜 주었다.
밥도 많이 주고 6.25때 백마고지에서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싸움을 해서 이긴 백마고지 대승을 부대 자랑삼아 말해주었다.
이제 배치될 것 다 된 것이니 각 소대 배치하여 완전히 짐들을 풀었다. 논산 훈련소 훈련은 기본 훈련이고 전방에 배치되었으니 다음 주부터 각 부대에 맞는 훈련을 몇주간 또 받아야 된다고 했다. 그 지긋지긋한 훈련을 또 받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적 부담이 너무나 컸다. ‘설마 논산 훈련소에서 받은 것보다는 덜 받겠지.’ 했는데 1주일 후부터 연속 훈련이 시작되었다. 사격 훈련, 야간 훈련, 포복 훈련, 땅바닥에 박박 배를 깔고 기어가는 훈련이었다. 밥을 세 끼 꼭꼭 주어서 먹기는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그 때까지도 우리 신병들은 백마 부대가 월남 파월 부대로 차출된 것을 몰랐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아니, 무슨 훈련이 이렇게 심하냐?”고 투덜댔다. 결국 숨은 것이 드러나는 때가 왔다. 월남으로 가기 위해 전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밖에 없다고 훈련 교관들은 말했다.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은 틈만 있으면 이론 교육과 실전 훈련들을 개별로 시켰다. 야간 훈련에서는 종이를 태워 숯검정을 만들어 얼굴에다 발라 위장하여 모두 얼굴들이 흑인같이 반질반질하였다. 새벽 2~3시까지 산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오면 빵 하나씩을 특식으로 주었는데 그러면 3일이나 굶고 먹는 것같이 맛있게 먹었다.
기마전 훈련, 군장 꾸리기 훈련, 아무 경황이 없게 했다. 모두가 집 생각, 아니 두고 온 애인이나 부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밤낮 주야로 훈련이었다.
태양도 밤이면 쉬건만 우리는 야간훈련까지 하게 되었다. 6월 장마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에 야간전투훈련을 새벽 2시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4시면 취침했고 7시면 다시 기상했다. 너무 피곤하고 고달파 병이라도 나서 병원으로 후송되어 가고 싶다고 모두 말했다. 그리고 모든 병사들은 부대의 엄격한 통제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편지들을 띄웠다. 월남 전쟁터에 가게 되었으니 빨리 빼내어 달라고. 그러자 편지들을 받고 부대 주변으로 부모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빽과 돈들을 쓰며 모두들 온갖 방법을 다해서 자식들을 월남에 가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나는 집으로 편지를 해봤자 돈도 없고, 마음만 안쓰럽게 생각할 것 같아서 아예 편지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부대 내무반에서는 모두 밤이면 끼리끼리 수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가 빽을 서서 안 갈 것이다. 훈련 중에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라고 수근댔다.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빽이라면 오직 하나님 빽밖에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결국 내가 빠질 것만 같은 믿음이 들었다.
마지막에는 병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창자가 뒤틀리고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아파서 밥을 못 먹고 뒹굴었다. 소대장이 알고 훈련을 빼줬다. 위생병에게 약을 타다 먹고 계속 치료했으나 낫지도 않고 고통만 심했다.
어지럽고 세상이 뱅뱅 돌았다. 너무 아파서 계속 설사만 하고 피가 섞인 대변만 좔좔좔 나왔다. 이질병이 난 것만 같았다. 훈련받는 고통보다 그 아픈 고통이 10배는 더 했다. 잠도 못 잘 뿐만 아니라 몸무게가 확 줄어 서서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어지럽고 힘이 없었다.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다 훈련 떠나고 내무반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난 기도하며 깨달았다. 월남 가는 것을 빼주기 위해 아프게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국가의 부름을 회피하고 민족을 위해 용감하게 싸움을 하지 않고, 빠져 도망가려 하는 모양이 성경에 나오는 요나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잘못을 회개했다. 눈물이 여름 장마비가 골짝을 흐르듯 양눈에서 흘러내렸다.
아무도 없는 내무반에서 뛰어 돌아다녀 봤다. 꿈이 아니고 망상도 아니고 생생한 생시였다. 너무 기쁜 나머지 기도 생활할 때 산에서 부르던 찬송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을 불렀다. 그 때 당시 조용히 기도할 때 음성 같기도 하고, 깨달음 같기도 한 계시가 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월남에 가서 용감히 싸워야 되지 않겠느냐? 네가 나 여호와를 믿으니 무엇을 두려워하랴? 죽음이냐, 환경이냐?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니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주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미약한 사람과 같은 행실을 했다고 하나님이 분노하신 것을 깨닫게 했다.
하나님 위신 세워드리지 못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이 소금과 빛의 행실을 못 하고 야비한 행실을 했다고 그 죄값으로 하나님이 병으로 때려 계시록에 나온 것같이 10일 동안 큰 환난을 당하게 했다고 깨닫게 했다. 다시는 이 같은 추접을 떨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그리고 부대 내에서 최고 용맹스럽고 사나이답게 월남에 가는 표를 내겠다고 맹세했다.
10일 동안이나 굶어서 몸무게가 확 줄었다. 식당에 내려가서 10일 만에 처음으로 밥을 물에 말아서 먹었다. 밥이 너무 맛있고, 꿀맛이었다. 어서 잘 먹고 몸이 튼튼해서 초인의 몸이 되어 훈련도 많이 받아 용감스럽게 월남 전투에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기뻤다.
나의 정신, 곧 나의 사고가 병이 들으니 육신이 병들게 되고, 결국 죽음을 초래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정신이 항상 건강해야 함을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절실히 깨닫게 했다.
부대원 전원이 야간훈련을 끝내고 새벽에 들어왔다.
모두 나에게 묻기를 “그렇게 아팠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옆 사람에게 간증하기 시작했다. 맘 잡고 기도하고, 회개했더니 이렇게 병이 나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기이히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