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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소개/정명석목사의삶

[나만이 걸어온 그 길] 8.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JMS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 중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정명석 목사
 
햇볕은 따갑게 내려 쬐고 땅에서는 더운 훈김이 마치 한증막의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이 성화를 부리며 올라오는 계절이다. 이런 날이라고 시원한 그늘 속에 앉아 있을 수만 없는 나의 운명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횟골 밭으로 호미를 들고 출근하신다. 
시골에서는 농사 짓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기 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일하기가 싫었다. 너무 일에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기가 죽기 보다도 더 싫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골에서 농촌일을 해본 사람은 이해가 갈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보리 베기, 보리 타작, 풀하기, 잡초가 나서 산처럼 된 밭매기…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완전히 기합이었다. 기합은 몇 시간에 끝나지만 이 일은 한 여름이 다 갈 때까지다. 
밭 지게질을 하다보면 등뼈가 굽어지고 앞정갱이가 구부러지며 양다리가 벌어져서 작은 키가 더 작아질 정도였다.내가 살고 있는 산중은 보통 4~5백 고지 높은 지역이다. 짐을 지고 다니면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라 평지보다 몇 배나 힘이 드는 지게꾼의 신세다.
나는 이런 환경에 살면서 늘상 지옥을 생각했다. 
지옥같은 삶이라 지옥 생각이 자주 나고 연상되었다. 이같은 고통의 결과 살아서는 지옥살이를 할지라도 죽어서는 천국살이를 하려고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1주일에 14번까지 교회에 나갔다. 어느 때 나가면 14번이 되는지 나가본 자는 알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한지붕 아래 사는 우리 식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쓴 고통을 겪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이 고통으로 인해 생각들이 깊어지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부모님과 나만 남게 되었다. 
그 때가 1975년도였다. 
그래서 나는 78년도까지 월명동 고향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 전선에 더욱 깊이 뛰어 들어야만 했다. 산 기도할 틈이 더욱 없어지고 성경을 상고하거나 연구할 틈도 더욱 없게 되어 심중에는 고민에 번민을 더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명을 걸고 가야 할 길이라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으르렁거리는 눈총을 받아 가면서도 밤이면 어김없이 나의 시간을 내기 위해 산으로 떠났다. 
대둔산, 감람산….잠은 못자도 일을 안하니 밤이 편했다. 
밤을 새워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그러면 낮의 강한 태양보다도 더욱 뜨겁게 내 마음에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인생의 허무함이, 인생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그 귀중함이, 미래의 삶의 희망이….
그렇게 기도하다가 견디다 못해 입은 옷 그대로 집으로 가기보다 밭으로 가기보다, 청중이 모이는 곳으로 달려가 외친다. 그러면 그들은 감동의 눈물을 나와 같이 흘리고 만다. 그 때는 일생을 두고 이 일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또 해가 뜨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의 가정사였다.
늙어 구부러진 부모님은 내가 없으면 내 몫까지 더 짐을 져야 했기에 그것을 생각할 때 눈물겹기만 했다. 어느 때는 멀리 기도굴에서 보면 아버지가 보릿짐을 지고 횟골의 산허리 길을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 한참을 쳐다 보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무거워서 꼬무락거리며 황소 걸음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내가 내려가서 한 번 짊어져다 주면 얼마나 쉬우랴. 먹을 때는 같이 먹는데 이래서는 안된다’
하며 내려가려고 하면 내 마음 한편에서는 미래를 위해 살라는 강한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육을 위해 살면 늘 저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곤고했다. 
‘사망과 생명의 양다리에 걸친 몸을 누가 건져내랴.’
하고 한탄하는 소리와 한숨 짓는 소리는 산울림이라도 울리게 할 정도였다.
 
또 창조론의 인봉을 뗀 다리골 기도굴에서 보면 어머니가 홀로 횟골에 앉아 밭매는 것이 눈앞에 훤히 보인다. 특히 감람산 최고봉에서 내려다 보면 실제 눈으로도 가까이 보인다. 
내가 내려가면 한 번에 두 골씩 매는데 어머님 홀로 비지땀을 흘려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늘을 뚫은 다음에라야 내려가야지’ 
그러다가 결국 한여름 동안 내려가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 아무리 배가 고파 창자가 말라도 양심상 집에 들어가 밥을 같이 먹을 수가 없었다.
나의 양식은 생명의 말씀과 산새들이 따먹는 산의 모든 열매들이었다. 얼마 전 옛 기도 장소에 가서 벚 열매를 제자들과 함께 마구 따먹으며 옛날 수도생활할 때 먹던 얘기를 해준 일이 있다. 제자들이 벚 열매를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하기에 계속 많이 먹어 보라고 했다. 그러면 입에는 달지만 속이 아프고 어지럽다고 했다. 
산열매들은 조금씩 먹을 때는 맛있는데 주식을 삼아 먹으면 다르다. 허리끈을 졸라맬 때나 먹을 수밖에 없는 열매라고 나는 깨달았다.
이런 운명의 길이 나에게는 10년, 20년이 아니었다. 
아! 그 날을 생각해 보니 다 꿈만 같다. 연단과 인생의 시련, 고통과 고뇌….
지금은 섭리 속에서 이런 일들이 오지만 나를 따르는 자들이 있기로 기쁨으로 영광을 삼고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 옛날 고통 중에는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는 욥기의 성구가 기억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별 희망도 소망도 기대감도 없었다.나는 연단이라기 보다 고생과 인생의 팔자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 옛날의 일들이 내 인생의 시련과 연단이었음을 더욱 실감케 될 뿐이다. 미래에 어떻게 잘 된다 하여도 너무나 하늘이 무너지는 고생과 역경을 겪으니 절망과 포기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너졌어도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으셨다. 일도 지나치니 진절머리가 나게 되어 일터로 나가기가 싫었다. 그러니 ‘먹는 것이 이렇게도 귀한가? 몸부림을 쳐야만 먹게 되니 그렇게 먹고 사느니 차라리 아예 먹지 말고 몸부림도 치지 말아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심령의 기쁨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먹는 것을 전폐하게 되었고 기도와 찬송, 성경 읽기만으로 나날을 보냈다. 먹기를 폐하니 육이 무너졌고 영의 기쁨도 육의 기반이 깨지니 지속될 수가 없었다. 
결국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절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때 육도 닦고 영도 닦아야 됨을 스스로 희미하게나마 절감케 되었다. 육도 살리고 영도 살려야 영육의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완전 구원, 이상적 구원, 곤고를 벗어난 구원임을 크게 깨달았다. 인생 편하게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깨달았고 겪어 보았다.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고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는 이야기만이 나의 마음에 실가닥 같은 희망을 주었다. 서초동 방초교회에 시무하시는 광석 둘째 형님은 그 골짝에서 너무 고생을 한 끝에 골짝만 생각하면 고향 떠난 20년이 넘은 오늘에까지 명절 때도 고향 땅에 가기가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 
까마귀도 10년이면 고향을 찾아가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얼마나 뼈를 깎는 고생을 하였으면 안가겠다고 하겠는가? 부모는 물론 장형으로부터 막내까지 모두 불쌍하게 갖은 고생을 하며 지낸 골짝이었다. 
시대가 그러해서 우리 뿐만 아니라 동네방네 모두 비슷한 고생과 곤욕을 치루면서 산 그 때가 눈에 선하고 훤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그렇게 밭고랑에서 여생을 보낸 결과 허리 수술까지 하게 되어 지금은 새우 허리가 되어 어린아이처럼 걸으시며 결국 반불구가 되어 여생을 만족히 지내시고, 아버지는 금광산 굴에서 40여 년을 보낸 끝에 호흡 지장으로 87세 고령으로 여생을 매듭짓고 계시다.
나는 그렇게 못먹고, 못자고, 못입고 번뇌와 고생을 했지만 오늘날 내 나이 50이 넘는데도 철구의 몸이 되어 초인 소리를 들어가면서 산다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알고 그 때의 고통의 역사가 연단과 단련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젊어서는 연단과 시련을 사서도 해야 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성현들의 말씀같이 들리고 시인(是認)하게 된다.
나와 같이 쓴 맛 단 맛을 보며, 뜻을 좇으며 사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순간도 그 늠름한 모습에 박수를 쳐주며 격려를 해 주는 마음 간절하다. 
용기를 내고 낙심치 말며 꾸준히 지속하기를 바란다. 금같이 연단하여 나와 같이 시대 뜻을 펴서 이 지상에 하나님의 이상세계 뜻을 이뤄야 되겠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따르는 자들이 잘못했을 때 금수같이 매를 대지 말고, 말로도 하지 말고, 그가 할 수 있도록 연단을 시키고 수련을 시켜주라고 하셨다. 역사도 그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련과 훈련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연습시켜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생명시 하며 행하여 보니 정말로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었다. 틀림없이 그렇게 바라는 대로 되고 말았다. 
못하면 책망만 하지 말고 하도록 가르쳐주고 가르쳐도 못하면 수련, 훈련, 연습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내 인생 젊음의 날 하나님은 나를 책망하기보다, 매질보다 먼저 가르쳐 주고 연단과 수련을 시켜준 것을 실감케 되었다. 
가끔 나에게도 하늘로부터 큰 매가 있을 때가 있었는데 금수같이 행하였을 때였다.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기 보다 모두 다 사랑하는데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제 2의 사랑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일이 크면 시간도 크게 들어가게 되고 큰 역사의 사역을 맡게 되면 문제도 그만큼 크게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맡은 큰 일을 피해 요나처럼 도망쳐서도 안될 운명이다. 
안된다고 포기하거나 어렵다고 돌아서지 말고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고 뛰고 달려야 되겠다. 나와 같이 뛰고 나와 같이 헤친다면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자 같아 비가 오고 창수가 나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에서 벗어난 만사의 일들은 모두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 같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그 무너짐이 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