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명석 그를 본 사람들

세상은 다 못 믿어도 (1) [한 편의 큰 가르침]

 

한 편의 큰 가르침

 

세상은 다 못 믿어도

 

 

1985년 나는 봉천동에서 선생님(정명석 목사)과 함께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큰형님 댁에 살고 계셨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하다가 모처럼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버지는 평소 말씀이 없으시고 엄하셔서 형제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까지 무척 어려워 하였다. 이날 인사를 받으시는 아버지 곁에 낯선 책이 하나 펼쳐져 있었다. 평소 성경책 외에 다른 책은 보지 않으시던 분이라 무슨 책을 보시느냐고 여쭤 봤다.  

아버지는 "여기 느 형 나왔다." 하시면서 책을 내 앞으로 밀쳐 주셨다. 책을 받아 보니 길거리 신문 가판대에서나 파는 조악한 주간 잡지였다. 그곳에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기사와 함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이것 다 읽으셨어요?"라고 여쭤 보았다. 

"다 읽었다."  

"아버지 속 많이 상하셨죠?"  

"속상하지. 이런 것 보고 기분 좋을 리 있겠냐?  그러나 큰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더 큰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일에 맘둘 것 뭐 있냐? 이  정도 일도 없이 성공하냐? 세상만사가 순풍에 돛 단 듯이 맘 먹은 대로 된다면 성공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아버지, 형님 하시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보다도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가 제일 잘 안다. 나는 믿는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너희 형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내가 봐 왔으니 믿는다. 나는 노다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고, 숱한 사람들도 만났고 많은 돈도 벌었던 사람이다. 그  돈이 다 없어져서 너희들이 고생해서 그렇지. 한번은 일본  놈들이 나보고 금을 캐서 숨겼다고 누명을 씌워 경찰서까지 끌고 가서 며칠 고생하고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 놈들 지독하고 무서운 놈들이지. 자기들이 목표한 만큼 금을 못 캐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괴롭혔다. 금이 나오면 덜 주려고 트집 잡고 안 나오면 못캤다고 못살게 괴롭혔다. 금이 나오면 어디다 감춘 것 아니냐고 누명까지 씌워서 가진 것까지 다 빼앗으려고 했으니 말 다했지. 그 사람들이 못할 일 많이 시켰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 한두 번이 아니다. 수없이  많다."  

"외로운 적도 있으셨어요?"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세상 애비들은 다 외로울 것이다. 너는 젊어서 인생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를 거다. 인생이 맘대로 될 줄 알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험하다. 세상은 무섭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다르지. 사기꾼도 있고, 재간꾼도 있고, 말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을 보는 방법과 요령이 생긴다. 천하 없이 말을 잘하는 사람도 그 사람 사는 것을 보면 알지. 내가 경로당에 놀러가 보면 말 잘하는 친구들 많다. 그런데 행동 보면 바로 안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훤히 드러나거든. 
​그래서 나는 너희 형을 믿는다. 내 자식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믿을 수 밖에 없도록 사는 것을 내가 봤으니, 세상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믿는 것이다.  너희 형은 맘이 너무 좋고 순해서 걱정 많이 했지. 남에게 받기보다 주기를 더 좋아했으니. 전도사님 집에 가더라도 밭에 가서 무 하나, 배추 한 포기라도 뽑아서 꼭 들고 갔다. 그게 쉬운 게 아니다. 하나님을 지극 정성으로 믿으면서 효도할 것 다 하고,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하고, 할 일은 제대로 다  했다. 부모 말이라면 뭐든지 다 순종하는데 내 말도 안 듣는 게 있더라." 

"그게 뭔대요?"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하나님 믿는 것은 양보를 안 해. 그건 요지부동이야. 말릴 수가 없어. 그런 때는 무섭더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 말려서 안 되겠더라. 그래서 자식은 맘대로 안된다니까. 그때 언제냐? 대둔산인가 어디서 전도하러 갔다가 미친 사람 데려온 것 너도 봤지? 

아무리 전도를 해도 그렇지. 멀쩡한 사람 놔두고 미친 사람을 데려왔다냐? 먹을 것이나 사서 주고 오면 되는 것을 굳이 집에까지 데려와서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 , 밥이나 따로 주지, 집안 사람들하고 같은 밥상에 앉혀 놓고 먹이니 원. 

 

내가 화가 나서 '이런 사람을 왜 데려왔냐'고 했더니 

 

"아버지도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으시잖아요.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해야지요?" 

 

하는데 맞는 말이니 할 말이 있어야지. 그것은 성경에나 있는 말이지. 누가 그것을 실천하겠냐? 그것도 혼자라면 몰라. 식구들 다 있는데 그러니  속에서 천불이 났지. 둘이 자다가 그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 지 아냐? 목이라도 확 조르면 죽지. 월남서도 살아온 사람이 미친 놈에게 죽었다고 해 봐라. 그것이 더 걱정이더라.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수근수근하지. 부모 속이 어떻겠냐? 자식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데 속상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냐?"  

 

 

 

세상은 다 못 믿어도(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