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큰 가르침
세상은 다 못 믿어도 (2)
"지금도 속이 많이 상하세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형님 때문에 속상한 적도 있으셨어요?"
"형 땜에 속상한 것이 아니라 나 땜에 속상했던 것이지. 금 캐서 번 그 많은 돈을 우리 가족을 위해서 한 푼도 못 쓰고 형제들이 다 없애 버렸어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명석이가 월남에 간다고 하는데 형제들이 한없이 원망스럽더라. 그 돈만 있으면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지 않았는데, 돈이 없어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오더라. 월남에 가서 너희 형이 보내주는 봉급이 처음 우체국에서 날아왔을 때 속으로 많이도 울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돈이 아니냐? 그 돈을 받은 날 ㅇㅇ(*정명석 목사의 둘째 형. 정명석 목사는 6남 1녀 중의 셋째로 위로 두 분 형님이 계심- 편집자)이가 그러더라.
'아버지 이 돈을 먹고 사는 것에 쓸 수가 없습니다. 이 돈을 밑천 삼아 인삼 농사를 지어서 가난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그 때부터 목숨 걸고 일한 것 아니냐?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 가지고 무섭게 일했다. 그때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금산군에서 인삼 농사 제일 잘 지었다고 소문났지.
너희 형이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루하루 조마조마해 하면서 살았다. 너희 어머니와 ㅇㅇ(*과 동일. 편집자)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예배 가서 기도 드리고. 느이 어머니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기도하러 교회로 달려갔지만, 나는 믿음이 너희 어머니만 못하고, 남자니 표도 내지 못하고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숯검정처럼 탔었다. 맘은 불안하지. 그래서 성경을 읽었어. 그러니 맘에 위안이 되더라. 그때 버릇 돼서 지금도 성경을 본다. 너희 형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살아 있겠냐? 하나님께서 살려 보내 주셨지. 그래서 느 형이 목숨 걸고 열심히 하나님 일하는 거겠지. 너희들은 내가 호랑이처럼 무섭다고
하지만 제 새끼한테도 호랑이 노릇 한다더냐?
예전에는 돈이 없어 거의 곡식을 헌금했었다. 어느 해던가, 그해 농사 지은 것 가지고 한 해를 넘겨야 하는데 그해 보리 농사가 흉작이여. 늘 부족하지만 그 해는 가만히 계산해 보니 많이 부족하겠더라. 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명석이가
'다음 주가 맥추감사절이니 감사하고 십일조해야 한다'고 하는 거야.
'네가 알다시피 농사가 시원치 않아서 이것 다 가져도 겨울 나고 내년 보릿고개 넘기기 힘들다. 그러니 올해는 적당히 넘어가고 내년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명석이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비 주시고, 햇빛 주시고, 길러 주셨는데 십일조 안 하면 어떻게 해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겠어요?'
'야, 굶어 죽어도 해야 하느냐? 우선 먹고 살아야지.'
'아버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더니 보리 있는 광으로 가더니 자루에 보리를 담더라니까. 말은 맞지, 성경에 나왔으니. (그런데:편집자 추가) 그런 상황에서는 지키기가 힘든 거 아니냐?
그렇게 맞는 말이고 옳은 일 하는데도 욕 먹고 미친 놈 취급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옳은 길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어려운 것을 알았다. 그러니 답답했겠지, 그래도 양보하지 않고 제 갈 길 가지 않냐?"
"아버지 지금은 그렇게 안 해요. 지방에서 학생들이 모임에 오느라고 밥을 못 먹어 배고프다고 하니 헌금할 돈 있으면 굶지 말고 빵 사 먹으라고 하던데요?"
"그 말이 맞지. 그걸 하나님께서 원하시겠지. 자식들이 배고프다고 하는데 부모 것이라고 달라고 하는 부모는 없겠지. 너희들이 나 무섭다고 하는데 그런 때는 나 하나도 안 무서워하더라. 나 무섭다고 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허허. 그렇게 무섭게 하니 큰일 하기는 할 거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지 않느냐. 또 바르지 않은 것같이 보여도 바른 것이 있고, 바른 것 같이 보여도 바르지 않은 것도 있다. 오늘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마라. 오늘의 실패가 더 큰 성공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기쁨이 내일은 더 큰 슬픔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초지일관 깨끗하게 살다 보면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평소 말씀이 없어 과묵하시던 아버님께서 그동안 묻어둔 사연을 다 털어 놓으시려는지 아버님의 말씀은 끝없이 이어져 갔다. 아버님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만큼이나 사연 깊은 인생을 살아오셨다. 그러고 보니 지난 6월이 아버님 생신이었다. 요즘 아버님께서 가슴 속에 묻어 두었다 말씀하신 심정 깊은 사연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이제 나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영감의시>
승리
-정명석
승리는
나의 것이다
나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영원히 주지 않는다
나는 이미
홀로 이 길을
산을 넘어 길고
긴 사막을
걸어가고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리 길 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가야 한다
한 자욱도
누가 이끌어 주어
가게할 자 없다
내가 가야 한다
안 가면
여기서 죽는다
이 산지옥을
지나가야 된다
-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