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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 소개/정명석 목사의 삶

어느 누구든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한테 원망하면 안 되고, 싸워도 안 됩니다

[정명석 선생의 삶]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한테 원망하면 안 되고, 싸워도 안 됩니다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정명석 선생




저(정명석 목사)의 어머니는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민족적으로 어려울 때 우리 형제들을 낳아 키우셨습니다. 

민족이 가난하고 가정이 가난한 시대에 나물 장사도 하며 이 동네 저 동네에 가서 거지처럼 얻어다 먹이고, 산에 가서 칡도 캐다 먹이고, 소나무 거죽을 벗겨내고 속에 부드러운 것을 벗겨다 먹여주고, 산에 가서 열매 따다가 주며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먹고 죽지 말고 살아서 성공하라고 길러주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들 딸 7남매를 낳고 기르시느라 대단한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가족(중앙아래가 정명석 목사의 어머니)



저의 나이가 일곱 살(한국나이) 때, 한국은 6.25 전쟁으로 인하여 극히 민족 전체가 가난한 때였습니다. 1950년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가난한 때로 한 끼 먹을 것도 구하기 힘든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때도 포기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살았습니다. 최고의 고통 중에서 사랑받고 살았으니 행복하게 산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어느 시대에 살아도, 각종 고통을 겪어도 아들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된다는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답니다. 자식 자랑에 자식을 향한 희망을 걸고, 자식이 잘 되기를 매일 빌고 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요즘 젊은 부모들도 그같이 사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할 줄로 믿어요. 


저의 어머니 말을 들어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했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감람산, 집터골, 다리골, 기도굴 지역을 다니며 나물을 캐다가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나물을 팔러 다니셨다고 합니다. 


멀리 금산읍 옆에 위성통신 안테나 설치 된 곳 있지요? 금산 쪽으로 월명동에 오고 갈 때 접시같이 보이지 않아요? 그 지역이 열두 개 마을로 연결되어 있답니다. 월명동에서 왕복 50리 이상 됩니다. 그곳을 걸어 다녔답니다. 열두 마을을 다 다녀도 나물이 한 덩이도 안 팔려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새벽에 집에서 나갈 때 굶고 있는 자식들에게 "얘들아. 이것 팔아서 양식 사와서 밥해줄게."하고 희망을 주고 떠났는데 나물 한 덩어리 못 팔고 그대로 돌아오니 그 얼마나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괴로웠겠습니까? 집에서는 온종일 아무 것도 못 먹고, 속이 쓰려 기다리고 있는 어린 자식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집에 오고 싶었겠어요? 사랑은 해줄 수 있어도 도저히 먹여 살릴 길이 없다고 포기를 했답니다. 고생시키며 사느니 '너희들도 죽고 나도 죽자.' 하고, 나물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로 목골 저수지 깊은 물에 뛰어 들었답니다. 나물도 물에 다 빠져버리고, 어머니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순간 생각하기를 ‘죽느니 이 독한 맘을 가지고 살 때까지 살자.’하고 기적적으로 다시 물에서 나왔답니다. 불꽃같이 살피시는 하나님도 이를 보시고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했을 것입니다. 


집에 와보니 힘이 없어 다 자고 있더랍니다. 자식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생각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네로 가보자. 거리에 나가서 죽 한 끼라도 구걸하러 석막리 마을로 가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뜬 눈으로 새벽 일찍 석막리에 가서 아는 집에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쌀 싸라기 한 바가지와 감자를 주어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죽을 끓여 자식들을 먹이고 위기를 넘겨 그것으로 며칠간 삶을 버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또 나물을 팔러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얻어다 먹이며 살았답니다. 모두 가난했던 시대였기에 나물을 팔려고 해도 나물이 팔리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모두 쑥을 뜯어다가 가루 한 주먹을 넣고 죽을 끓여 먹었던 시대였습니다. 


저도 그때 기억이 나는데 사람들의 몸이 비쩍 말라서 마치 뉴스나 책자에 나오는 소말리아 어린아이들처럼 배만 올챙이처럼 나오고, 눈만 튕겨 쳐 나왔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랑하며 앞날에 희망을 걸고 길렀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한테 원망하면 안 되고, 싸워도 안 됩니다. 

별별 환경에서 사랑하며 길러주었고, 또 줄 것이 없어서 못해주었으면 잘되라고 기도해주고 바라셨으니 그것이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 일입니다. 


말씀을 들은 자들은 보이는 부모께 효도하고, 신앙의 부모께 효도하고, 하늘 부모께 효를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고로 주 안에서 부모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안 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해도 안 됩니다. 어서 성공해서 잘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애인같이 사랑해주고 정성 다해 모셔주는 것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부모 죽은 다음에는 못해준 것을 평생 후회합니다. 

부모는 해줄 것 다 해주면서 길러주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본인들이 해야 합니다. 

부모 죽기 전에 효도하고, 영계에 가서 같이 살도록 전도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해준 것처럼 갖은 창피 무릅쓰고 부모한테 해봐요.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부모를 사랑해야 오래 살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해주었던 정신을 받아 선생도 섭리사 모든 자들을 대해주는 것입니다. 부모같이 위대한 자가 없습니다. 강한 자가 없습니다. 고마운 자가 세상에 없습니다. 자식이 기도 안 해줘서 죽을까? 병들까? 생각하며 늘 기도해줘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