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큰 가르침
대화
월명동에 내려와서 일을 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몇 년 전 추석 연휴가 끝나 가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보니 몇 그루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것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창고로 내려와서 도구를 챙겨 들고 나무에 올라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올려다보고 계셨다. 가지치기를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간 줄 알았던 그 분은 그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어떤 분과의 만남
"안녕하세요? 휴일인데 일을 하시네요. 여기 음료수 있는데 좀 마시고 하시지요?"
나 : "감사합니다. 인생에 휴일이 있나요?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일하시는 분이 철학자 같네요?"
나 : "저야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집에 안 계시고 혼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저도 하루 쉬고 나니 별로 할 일도 없고 또 가족이 없습니다. 이곳에 오면 조용하기도 하고 소나무 산책로를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 : "여기 온 것이 처음이 아니시군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늘 혼자 조용히 왔다 가곤 했지요. 은퇴를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나 : "인생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지만, 저도 살아 보니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선생께서는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라.' 고 가르쳐 주셨고, 또 그렇게 사셨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진리는 배우기도 어렵지만 실천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배운 대로만 살아간다면 이상세계인들 못 이루겠습니까."
실례지만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신지요?
나 : "실례지만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신지요?"
"말씀드리자면 성직자이지요."
나 : "그러시면 스님은 아니신 것 같고, 목사님 아니면 신부님이신가요?"
"목사입니다."
나 : "대개 목사님들은 여기 한 번 다녀가시면 그 뒤로 잘오시지 않는데 목사님은 다르시네요."
"특별하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선입견을 갖고 봐서는 안 되지요.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 : "그래도 목사님은 생각하시는 폭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세 번씩이나 오셨다니 이곳에 오시면 좋은 일이 있습니까?"
"정말 좋지요.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자연적입니다. 개발은 했지만 인위적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모든 것을 품어 줍니다. 인간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만 같이 모여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활엽수와 침엽수, 가시나무, 잡초들까지 모두 어우러져 다투지 않고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내 것만 옳다고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시면 힘은 들겠지만 공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 : "그렇습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워도 나무 그늘만 들어 오면 시원합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 나무 밑에서 물 한 잔 마시면 전율이 느껴집니다.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이곳에 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가면 되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보지 않고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곳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수 없이 다른 의견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곳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 와서 대화를 해 보고 나서야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저와 대화를 하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 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처음에는 훈련을 받아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 와서야 그것이 훈련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배워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 이곳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습니다. 제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만났던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 "목사님께서 그렇게 잘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해서 배우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혹시 보셨는지요? '오직 주 하나님' 이라고 돌에 새겨 놨는데, 그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근본 뿌리입니다."
"봤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보고 그냥 넘겼는데 여기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왜 그것을 써 놓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여기 지도자의 교육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목회를 40년 이상 하고 이제 곧 70을 넘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성공한 목회자라고 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겪어 봤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저는 훈련이 덜 됐지요. 그래서 세련되게 말하지 못하고 행동도 어설픕니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은 상대에게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훈련을 한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제 나이 정도 되면 누구나 다 진위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나 :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시고 은퇴를 앞두시고 인생을 돌아보시는 목사님을 보니 참 보기 좋습니다."
"무슨 성공이요? 남들이 말하듯이 제가 성공한 목회자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다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교인들이 주님의 삶처럼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올바른 삶을 산 것이고 제대로 된 목회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물음에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봐도 그런데 주님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나 :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 자체가 성공한 것 아닐까요?"
글 : 정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