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큰 가르침
회상 (1)
걷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소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새해 벽두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조용해서 더욱 좋다. 월명동은 어디를 가 보아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그중에 산책로는 날마다 다녀도 새롭고 신선하다. 도시에서는 마실 수 없는 맑은 공기, 적당한 높이와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 매연으로 가득 찾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복잡한 세상사까지 다 잊혀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선생님(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께서 월명동을 개발하러 이곳에 내려오셨을 때
'왜 시골 오지에 개발을 하려고 할까? 대기업 본사나 큰 단체들은 본부를 다 서울에 두고 있고, 수련원도 교통이 좋고 물도 있고 경치 좋은 곳에 개발하는데 우리는 왜 이런 곳에 개발할까?'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심스런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가지 루머가 많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묵묵히 일에 몰두하셨다.
길 닦기가 도 닦기다
1990년. 선생님과 함께 월명동에 와서 이 산책로 길을 닦을 때만 해도 소나무들은 내 키보다 작거나, 약간 커서 해를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는데, 이제 어느 길을 가든지 햇빛을 볼 수 없을 만큼 한 아름 되도록 나무들이 자랐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선생님과 함께 산책로를 닦으면서 있었던 사연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선생님께서는 장수바위, 성황당, 가는골, 회골, 다리골, 기도굴 가는 길 등 많은 길을 닦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산책로를 능선으로 내는 이유가 있다. 능선에서 봐야 양쪽 골짜기를 다 볼 수 있다. 또 저 멀리 대둔산, 계룡산까지 보이니 답답하지 않아서 좋다. 골짜기 길은 멀리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골짜기 길처럼 답답한 인생 살지 말고 넓은 세상을 멀리 바라보면서 시원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한쪽 면만 바라보고 치우쳐서 살지 말고, 저울처럼 신앙도 삶도 중심을 잡고 균형 있게 살아야 한다. 또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양쪽 말을 다 들어 보고 판단해야 실수가 없다. 길 닦기는 도 닦기다. 길 닦기가 도 닦기처럼 힘들지만, 길을 한 번 내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며 혜택을 받고, 길을 닦은 사람은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길을 닦으시면서 쉴 만한 나무 그늘이 있으면 나뭇가지에 통나무를 걸쳐 놓으셨다. '이 길을 걷다가 힘들면 이곳에서 앉아 잠시 쉬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곳'이라고 하시며 통나무 의자를 만들어 놓으셨고, 거기에 앉으셔서 예수님과 인생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는 낭만적이시고 아무리 바빠도 여유가 있으셨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산책로를 걸었겠지만 통나무 의자에 앉아 인생과 예수님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때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산책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 날 그 날 선생님을 따라 일하기 급급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손수 나뭇가지도 정리하시고, 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고르고, 풀을 베고, 나무 뿌리와 돌부리를 캐내셨다.
일이 익숙하지 못하여 어설프게 일하는 우리들을 보시고
"일은 야물게 해야 한다. 나중에 연로하신 어른들과 네 아이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산책하러 올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닐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하시며
"깔끔하게 네 안방처럼 정성스럽게 다듬어야 한다. 진리가 모순이 없듯이 길도 위험이 없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길을 닦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 부모요 형제요 자식이다."
그때 우리들은 다들 결혼전이고하여 말씀이 실감나지 않고 잘 몰랐지만, 지금은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이 산책로를 뛰어다니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손자 손녀들 손을 잡고 산책하시는 것을 보면 그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월명동 어느 곳을 가든 선생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