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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소개/정명석목사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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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밤이 다시 오지 않기를 [나만이 걸어온 그 길 #11] 행복은 우리들을 만나기 원한다! 다만 우리와 행복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있고 넘기 어려운 산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각기 지구력을 가지고 홀로 넘어가야 된다. 넘기만 하면 그 행복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이는 20대에 만나게 되고 혹은 30대에 혹은 40대에 혹은 50대에 혹은 60대에 혹은 70대에 만나게 되며 어떤 이는 80대가 넘어야 만나게 된다. 이상의 세계, 행복을 위해 어서 뒤로 돌아선 몸을 다시 돌려 가던 길을 향해 바로 걸어가야 되겠다. 그러면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 그 바라던 행복의 세계를 만나고야 말게 된다. 이왕이면 보다 젊은 날에 만나야 되겠다. 행복은 10년 마다 혹은 5년 마다 혹은 3년 마다 더러는 1년 마다 온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땀을 줄줄 흘리며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 [나만이 걸어온 그 길 #10]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 인간의 생각에 비하여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다고 했다.인간의 생각은 아예 사망이라고 하나님은 엄명하셨다. 인간의 생각으로 살고 간 사람치고 죽을 때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아마 후회치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직도 인생을 모르고 무지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겠다. 인간의 생각도 인간보다 한 등급 낮은 동물의 생각에 비하여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보다 한 등급 낮은 우리 인간의 생각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과 같이 높다고 보는 자는 인생과 하나님, 또 동물의 지능을 깨달은 자이다. 만일 동물이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하고,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며 또 신기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랴! 하..
다리골 기도굴에서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9] 30년 수도 생활을 하며 전국, 세계, 간 곳도 많지만 깊이 묻혀 기도한 곳은 몇 군데이다. 그 중 하나가 내 고향 다리골 기도굴이다. 다래가 많다고 다래골이었는데 발음상 그저 쉽게 다리골로 후손들이 이름을 불러온 골짝이다. 다리골 기도굴은 일본이 통치하던 1905년부터 1945년 사이에 금을 캐기 위해 파들어간 굴이다. 깊지는 않지만 외부 사람들을 피해 기도하며 책을 볼 수 있는 조용한 굴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약 1.5km 떨어진 굴이라 낮에 일을 하고 가도 부담이 없는 거리였다.온종일 피곤하게 일하고 씻고 닦고 저녁을 먹은 후 기도하러 가기에 거리 상 좋았다. 늘 나무하러 다니던 산이기 때문에밤에도 무섭지 않고 정신적인 부담도 별로 없었다. 광산은 오래전에 금이 나오지 않아 철거되..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8] 햇볕은 따갑게 내려 쬐고 땅에서는 더운 훈김이 올라오는 계절 햇볕은 따갑게 내려 쬐고 땅에서는 더운 훈김이 마치 한증막의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이 성화를 부리며 올라오는 계절이다. 이런 날이라고 시원한 그늘 속에 앉아 있을 수만 없는 나의 운명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횟골 밭으로 호미를 들고 출근하신다. 시골에서는 농사 짓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기 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일하기가 싫었다. 너무 일에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기가 죽기 보다도 더 싫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골에서 농촌일을 해본 사람은 이해가 갈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보리 베기, 보리 타작, 풀하기, 잡초가 나서 산처럼 된 밭매기…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완전히 기합이었다. 기..
사랑하라!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7]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일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일이다. 전날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확인 차 수색을 나갔다. 적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간혹 죽지 않고 부상당한 채로 있다가 보복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간 동료와 둘이서 한 시간 가량 초긴장 속에 살금살금 기어가며 조심스럽게 정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3미터 앞 한 아름 반이나 되는 큰 나무 옆으로 사람 얼굴 반쪽과 함께 나를 향해 겨눠진 총구가 확연하게 보였다.나와 마주친 그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순간 내 온 몸이 굳어지면서 현기증이 일었다. 앞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상황 그대로였다. 나도 한 손에 총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총을 들어 올릴 힘도 없고 조종할 정신도 없었다. ..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깨닫던 어느 날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6] 월남 파월 20일이 다 되어갔다 고개를 발딱 뒤로 제끼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만 말없이 떠어갔다. 푸른 하늘 흰 구름조차도 모두 낯설고 물설을 이국 땅이다. 열대의 작열(灼熱)하는 태양이 역시 이국 땅 월남임을 부인할 수가 없게 했다. 폭음 소리가 들려오고 귀청이 찢어질 듯 들리는 소총소리에 마음은 섬짓하고 머리털은 하늘로 올라갈 듯 곤두선다. 나는 적을 노리고 적은 나를 노리는 긴장과 심정 애태우는 전선의 낯설은 월남 땅 나트랑이다.월남 파월 20일이 다 되어갔다.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생명을 두고 생각이 깊었다. 내 생명이라 해도 참 자신이 없었다. 누구는 호언장담을 하면서 “또 다시 돌아가마, 고향 하늘아!”하며 그저 가벼이 말하지만 앞날을 훤히..
그 길은 생명구원의 발길이었다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5] 사람은들은 누구든지 저마다길을 각자 걸어오고 걸어간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저마다 길을 각자 걸어오고 걸어간다. 나도 나만이 걸어온 내 인생길이 있다. 그것들을 돌이켜 보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의 하늘 인생을 살기 위함이었던 것이 마음 깊이 절실하게 깨달아진다. 내 인생의 고통과 고뇌들은 모두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한 날의 괴로움은 오늘 이 날의 기쁨이 되었다.세상의 모든 영웅열사들이 그러했고 노아, 엘리야, 모세, 요셉 등 성서의 중심인물들도 하늘을 만나기 전에는 각자 자기만이 겪는 눈물겨운 길들이 있었다. 나 또한 내 인생에 있어 파란곡절이 많았다.가정에서 나를 이해하기까지는 거의 30여년이 걸린 것 같다. 그 오랜 기간은 하늘이 숨겨 그렇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가정..
한 노인의 예언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4] 나는 10대부터 방황길에 접어들면서 인생 문제에 부딪쳐 머리를 싸매고 살아야 했다.머리 속에서 겪는 고통은 누가 곁에서 치료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신적인 고뇌는 뼈가 쑤시고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겪어본 자는 잘 깨닫고 이해가 빠를 것이다. 첫째, 달동네에 사는 가난의 고통으로 빈부격차에서 오는 고통.둘째, 못배운 고통.셋째, 환경의 고통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한 두메 산골에서 사는 고통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희망도 아무런 소망도 없는 산골짝이었다. 넷째, 못생겼다는 콤플렉스.다섯째, 말더듬이로 나에게는 언어의 장벽도 큰 고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생각은 하나 표현을 잘 못하는 언어 불구자였다.여섯 번째, 내 마음의 한계를 깨닫고 나의 무지를 개탄하며 한하기 시작했다.일곱 ..
이런 일들도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3] 군 제대하고 그 다음해 9월의 토요일이었다 군 제대 하고 그 다음해 9월의 토요일이었다.그 날은 인삼 검사 받는 것을 꼭 신청해야 되기에 금산 인삼조합에 급히 가게 되어 진산에서 금산행 버스표를 사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기다리는 차가 오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내 고향 교회의 주일 학교 교사를 하다 진산에 의상실을 차린 사람의 가게에 너무도 가보고 싶어졌다. 견딜 수가 없어 잠깐 갔다 와야지 하고 그곳으로 갔다. 오랜만이라고 반겨주며 커피 한잔을 시켜주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jms 그러다 그가 나에게 왜 왔느냐고 해서 실상 금산 인삼조합에 인삼검사를 다음주에 반드시 받아야 하기에 지금 신청하러 가는 길인데 버스표를 끊어놓고 기다리던 중 그저 갑자기 생각나서 ..
내 젊은 날 수도 생활의 하루 일과 2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2] 벌써 내 방안에 겨울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 아버지, 어머니, 광석 형, 영자, 규석, 범석, 용석, 나, 여덟명이다. 시레기국에 수수밥, 그리고 밥에다 고구마 몇 개 얹어놓은 식사이다. 반찬은 김치가 전체 몫을 했다. 식사가 끝나면 모두 할 일이 태산 같다. 겨울이라 할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그 지겨운 인삼밭의 꺼치 엮기를 해야한다. 나도 지겨웠지만 특히 우리집 상머슴이라고 칭호가 붙고도 남을 어머니이셨다. 사랑방에 들어가면 온종일 나올 줄을 모르신다. 우리는 후다닥 소낙비 일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계보다도 더 무섭게 꾸준히 일하시던 모습, 천인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아버지는 동네 마실 가시고, 때에 따라 꺼치 엮는 일을 하셨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하셨다. ..
내 젊은 날 수도 생활의 하루 일과 1 [나만이 걸어온 그 길 #01] 어제는 군불을 덜 땠는지 새벽도 채 안되어 방구둘은 내 덕을 보려고 한다.일어나니 방바닥은 벌써 냉방이 되고 턱주가리가 흔들린다. 벌써 새벽 3시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살을 에이는 혹독한 추위가 느껴지는 한 겨울의 새벽이다. 내가 일어나 제일 먼저 갈 곳은 냉수목욕 장소인 마당 구석의 바가지 샘이다. 오늘은 너무나 추워 몸에 찬물을 끼얹기가 싫었다. 하지만 냉수욕을 하지 않고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꿉꿉한 일이다. 낮은 바가지 샘은 꽁꽁 얼어 버렸다. 발로 밟아 깨뜨렸으나 깨어지지 않았다. 꽤 두껍게 얼어붙었던 것이다. 쇠망치를 가져다 깨어보니 손 두께만큼이나 얼었다. 겨우 바가지가 들어갈 만큼 구멍이 뚫어졌다. 아직 옷을 벗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유난히도 춥고 강신이 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버릇처럼 형..
베트남 전쟁터에서 구해주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베트남 전쟁터에서 구해주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아래의 내용은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정명석 목사가 베트남 전쟁터에서 연속적으로 기도하여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어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정명석 목사 간증] 베트남 전쟁터에서 구해주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베트남 전쟁터에 있을 때였습니다. 작전이 있을 때마다 부대원들 중에 두 사람씩 돌아가면서 작전에 나가지 않고 부대에 남아 근무를 서게 됩니다. 저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이었습니다.  저는 저녁 6시~밤 12시까지 근무를 서고 돌아와서 내무반 침대에서 자고 있는 다음 근무자를 깨웠습니다. 그는 저보다 계급이 높은 하사였습니다. 그는 채 하사였습니다. 저는 그때 병장이었습니다. 저는 근무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