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목사소개/정명석목사의삶 (88)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명석 목사님의 삶] 갓난아이 때 일어났던 이야기 [정명석 목사의 삶] 갓난아이 때 일어났던 이야기 글 : 정명석 목사 이 말씀을 전하는 저(JMS 정명석 목사)는 갓난아이 때 아파서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고 내 어머니가말씀해 주셔서 알았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해 줄 테니 들어 봐요. 저(JMS 정명석 목사)는 갓난아이 때 일어난 일이라서 기억이 안 납니다.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기에알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되었을 때 제(정명석 목사)가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되었을 때 아파서 다 죽어 가기에 어머니는 저를 흰 홑이불로 푹 덮어서 윗목에 밀어 붙여 놨답니다. 그리고 식구들 저녁 식사를 차려 주고 식구들과 시어머니가 잠이 들면 저녁 8~9시쯤 안고 가서 항아리에 넣어 뒷동산 땅에 묻으려고 했답니다. 그래서 저녁을 기다.. [정명석 목사님의 삶] 10대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의 삶] 저는 10대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 : 정명석 목사님 저(JMS 정명석 목사)는 10대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많고 많다. 잘생긴 사람들도 많고 배운 사람들도 많은데, 나(JMS 정명석 목사) 같은 사람은 1등 하기 글렀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맨 끝에 서 있는 꼴찌겠다. 앞자리에는 날고 기는 사람들이 앉게 될 거야. 주님 앞에 금메달을 딸 사람은 잘 배우고, 잘나고, 힘 좋고, 유능하고, 잘 타고나고, 머리 좋은 사람들로 이미 정해져 있어. 그저 구원이나 받으면 다행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가까이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주님의 사랑과 구원의 법은 저(JMS 정명석 목사)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은 "누구든지.. 전쟁터에서 원수를 사랑한 이야기 "사랑하라" 선생(정명석 목사)이 30년 동안 언제 나의 원수를 해한 일이 있습니까? 한 명의 원수도 해한 일이 없습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도 나를 죽이려고 총구를 겨누었던 적에게 총을 쏘지 않고 쫓아가서 생포했습니다. 그것이 쉬운 일인지, 전쟁이 나면 해 봐요. 총이 없는 생활 속에서 말로 하는데도 그렇게 못 하는 자들이 전쟁터에서 그같이 하겠어요? 선생(정명석 목사)은 고아도 아니었고 이판사판 막 사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7남매 가정에 부모님이 계셨는데 죽으려고 위험한 일을 하겠습니까? 또 선생은 머리에 영웅심이 꽉 차서 카리스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비쩍 마른 적이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고 내가 먼저 적을 봤는데도 총을 안 쏘고 쫓아가 잡는 것은 쉬운 일입니까? 행여 선생이 총을 잘못 쏴서 적이 안 맞을까 봐 .. 진산 중학교에서 축구를 하게 된 이야기 [정명석 목사의 삶]진산 중학교에서 축구를 하게 된 이야기글 : 정명석 목사 저(정명석 목사)도 다른 길로 가려다가 축구를 하던 중에 다쳐서 매를 맞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절대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갔습니다. 때는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후에 아나운서가 되어서 온 민족을 전도하겠다고 하며 아나운서의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진산 중학교에서 골키퍼를 하게 되었는데...그러던 어느 날, 진산 중학교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골키퍼를 했습니다. 상대편에서 볼을 찼는데 제가 몸으로 볼을 잡아서 막았습니다. 그런데 볼을 찬 자가 제가 볼을 잡은 것을 알고도 다시 한 번 더 발을 휘둘러 제 머리를 찼습니다. 그때 그는 구두를 신고 있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딱 하나 갖고서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딱 하나 갖고서 성공한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 내가 진리 말씀을 가장 많이 깨닫고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봤을 때는 미친 척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았을 때였습니다. 영하 20도에서도 미친척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찾았을 때 많은 신령한 세계를 보았고 진리를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의 전성기는 나이 먹으면 지나가지만 하늘 사랑의 세계는 항상 가질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이 나에 대한 임무를 깨닫고 하나님 일꾼인 것을 깨달은 자는 어떤 것으로 보나 학문적으로 보나 나를 세울 만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세웠을까 궁금해서 많이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늘을 너무 좋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딱 하나 갖고서 성공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 [나만이 걸어온 그 길] 31. 백마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백마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2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7주 이상 훈련을 받았는데, 마지막 코스는 도롱태를 타고 강 위로 하강하다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코스였다. 서로 앞에 안 타려고 했다. 교관은 “첫번째 정신 안 차리고 내 말을 듣는 대로 안 하면 죽는다. 내 명령은 생명이니 듣고 꼭 그대로 하라.”고 했다. 절벽 위에서 강인가 냇가인가 내려다보니 까마득했다. 훈련도 전투이니, 훈련 중에 죽으면 전투에서 총맞아 죽은 취급을 해주어 전사비가 나오니 개죽음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훈련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한번 타보고 또 타겠다고 사정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 무서운 코스를 또 타느냐고 물으니 너무 재미있어서 또 타본다는 사람이 90%이상이라고.. [나만이 걸어온 그 길] 30. 백마 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백마 부대에서의 훈련과 파월1 글 : 정명석 목사 논산 훈련소 전반기 6주 훈련과 후반기 금마에서 3주 훈련을 마치고, 5월초 논산 배출대를 거쳐 최전방 강원도 103보 보병으로 배출받았다. 처음에는 강원도로 배출된 것이 너무 싫었다. 서울이나 경기도면 얼마나 좋으랴! 강원도는 고생하는 곳이라 누구나 인상을 찌푸렸다. ‘못 배웠으니 최고 말단 지역으로 갈 수 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강원도 지역 중에서도 더 전방 철책선으로만 안 갔으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 좀 생각해달라고 마음으로 빌며 간구했다. 좀 편한 곳으로 배치되어 시간 좀 내어 성경이나 많이 읽고 싶었다. 수백 명이 줄줄이 서서 따불백을 둘러 메고 모두 좋은 장소로 배치받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여 일으킨 <몽산포 기적> 기도하여 일으킨 지난날 저(JMS 정명석 목사)는 한국 서해 몽산포 해변가에서 시간이 되어 밀려오는 밀물이 못 들어오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날은 1995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은 한국이 4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해방된 날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자는 뜻에서 한국과 일본 섭리인들이 모여 배구 경기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청중과 함께 마지막 클라이맥스 행사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시간이 되어 밀물이 들어오니 행사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더 이상 행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하루 행사의 결론을 짓는 마지막 순서 하나만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저기.. [JMS 정명석 목사의 삶] 베트남 참전 이야기 저는 머릿 속에 늘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저(JMS 정명석 목사)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인생길을 찾았습니다. 늘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수님과 인생을 결부시켜 생각하며 머릿속에 늘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같이 살다가 군대에 가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내 옆의 전우들은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전투 수당을 타면 먹고 즐기는 데 썼고, 이성 사랑과 향락에 썼고, 술과 담배를 하는 데 썼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모두 그런 세계에 쓰고 즐겼습니다. 99% 그같이 살았습니다. 저(JMS 정명석 목사)는 이같이 인생을 살면서 타락하는 자들을 보고 거울로 삼아 더 성경을 읽고 주님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전우들은 이런 나를 보고 “참 모.. [간증] 하나님과 예수님께 구해서 얻은 월명동 자연성전 [간증] 하나님과 예수님께 구해서 얻은 월명동 자연성전글 : JMS 정명석 목사 * 제(JMS 정명석 목사)가 예전에 하나님과 주님께 구해서 얻은 것을 간증해 주겠습니다.90년대 초에 서울 평창동 전셋집에 살았을 때입니다. 그 집에 정원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작고 작았습니다. 그래서 뒤쪽 담을 넘어가면 산이 있었는데, 그곳의 풀을 깎고 닦아 놓고는 답답할 때마다 산으로 나가서 정원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그곳 역시 세 사람이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습니다. 모일 마땅한 장소가 없어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저를 가까이 못 봤으니 집으로 계속 찾아오는데 같이 있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속상하여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오는데 같이 있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속상하여 주님께.. 평화의 왕 예수님의 함께하심으로 이루어진 기독교-천주교 500년만의 화해 제가 이태리 로마에 있을 때였습니다. 로마는 4세기가 되기까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이 되기까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극심하게 박해했던 곳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피로 얼룩진 순교의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평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99년, 저는 로마에 있다가 잠시 밀라노로 갔습니다. 그 때 천주교와 개신 기독교는 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극심하게 싸우고 서로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천주교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그토록 극심하게 핍박하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아직도 그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밀라노에 있는 두오모 성당에 가서 신부들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천주교 신부님에게 천주교와 개신 기독교의 싸움의 핵이 되는 천주교.. 하나님이 주신 운동기구 [정명석 목사의 삶] 하나님이 주신 운동기구 글 : 정명석 목사 예전 사진을 보면 저는 다리가 휘어져 있어서 몸매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운동을 해서 다리가 멋있습니다. 이처럼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운동기구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해서 하나님께 운동기구를 하나만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집에 있는 운동기구는 너무 단순해서 못하겠으니 멋있는 운동기구를 하나만 주십시오’ 이렇게 계속 기도를 했고, 기도를 할수록 하나님께서 수십 가지의 운동기구를 장만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감동이 왔지만 그렇다고 운동기구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하루는 마당에 나가서 이것저것을 살피는 중에 얕은 담장에 다리를 올려놓고 쭉쭉 뻗는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돌..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 정명석 목사의 87년 9월 27일 설교 중 설교하는 정명석 목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첫째 진로입니다 저에게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첫째 진로입니다. 그것의 표상이 제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구구만상의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여기까지 올라왔으며 또 앞으로 갈 길의 사명을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친필 '오직 하나님 사랑' 저는 하나님 의지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해서 올라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 의지할 것이 못된다. 내가 많이 당해 보았다. 본래 나는 생화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조화를 좋아한다. 왜? 생화는 변한다. 인간이 변하는 것 꼴.. 내가 너를 위해 죽어주었는데 왜 죽으려고 하느냐? 내가 너를 위해 죽어주었는데 왜 죽으려고 하느냐? 한 번은 교회 탑에 매달 종을 사기 위해 경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 때 당시는 노방전도에 불이 붙어 1년이면 만 명씩 전도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기차를 탄 김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을 먹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는 여고생들로 붐비는 기차 칸에서 막상 전도를 하려고 섰지만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도저히 말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니 사람들의 눈초리도 무슨 수상한 사람을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너무나 낙심이 되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 기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나 같은 병신은 죽는 것이 낫다. 배운 것도 없는 내가 이렇게 실천도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려야 겠다.' 면서 .. 10대 때 보게 된 나의 영 10대 때 보게 된 나의 영 제가 10대 때 다리골 기도굴에서 기도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다가 기도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도굴 앞에 한 사람이 있기에 깜짝 놀라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귀신인가?’ 했습니다. 그래서 “귀신아, 물러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아홉 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그렇게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예쁜 여자도 거기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예뻐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쓰다듬다가 그 살결에 흠집이 날까 봐, 또 사라질까 봐 손을 못 댔습니다. 살결이 너무 빛났습니다. 그 얼굴에 손가락만 대도 손가락이 들어갈 것같이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너 누구니?” 계속 물었는데도 그 아이는 웃기만 하고.. 모든 유혹은 자기가 절대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이깁니다 모든 유혹은 자기가 절대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이깁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멋쟁이 여자도 소용없었습니다. 한번은 위문 공연을 온 여자 연예인이 공연을 마치고 텅 빈 막사에서 혼자 조용히 막사를 지키는 내게 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군용 침대에서 엎드려 성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멋쟁이 여자가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자: “군인 아저씨. 저 좀 봐요. 성경 보고 있네요. 왜 혼자 있어요?” 선생: “모두 다 공연장에 가고 나 혼자 있습니다.” 여자: “정말 진실한 교인이시네요. 저는 이런 참된 사람을 찾았어요. 앉아서 저와 이야기해요.” 선생: “저는 성경 봐야 해요.” 여자: “저는 가수이고 22살이에요. 연예인이 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정말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9.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2 훈련 받으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일이 있다. 기합받은 일이다. M1 250m 사격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머리를 땅에 쳐박고 엎드려 양손을 등에 얹고 기합받는 일이다. 원산폭격이라는 무서운 기합이었다. 시간은 15~20분으로 기억된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 군화발로 채이고 했다. 이 기합은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이들 받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결심하고 사격에 대해 강의할 때 열심히 배우고 연구했다. 그 후 성적이 좋아져서 사격으로 기합받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전방에 배치되었을 때는 특등사수도 되어 훈장도 받았다. 그 후 월남에 파월되었을 때 저격수 임무를 수행했었다. 적이 나타나면 정확하게 총을 쏘는 일이었다. ..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8.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군대 훈련병 시절의 신앙생활 1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1966년 2월 14일 군입대 영장을 받고 1주일 후인 22일, 논산 연무대에 21살 나이로 육군에 입대했다. 22일 봄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새벽 5시에 부모님께 인사하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께서는 동네 마을 샘 어귀까지 바래다 주었다. “어머니 잘 갔다 오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인사 속에 섞여 나왔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내 몫까지 일을 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역시 나를 걱정하며 잘갔다 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또 마지막으로 군대 가서 돈벌어서 집에다 부쳐줄테니 받아서 잘 쓰시라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인원..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7.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2 JMS 정명석 목사의 중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2 글 :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목사 랜턴을 머리 쪽에 대고 머리를 툭툭 치니 초긴장하여 고개를 드는데 눈만 반짝였다. 적을 보고 담대한 것이 전쟁터에서 군인의 기본 정신이기에 담대했다. 월남말로 “여 따이렝” 하며 손들라고 소리를 질렀다. 적이 손을 들고 쭈그리고 앉았다. 구둣발로 옆구리를 툭툭 차면서 겁을 주었다.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는 랜턴을 비추면서 몸수색을 하다, 약간 기미가 이상해 먼저 적의 양손을 뒤로 결박하여 꽁꽁 묶어버렸다. 적들은 사생결단하는 시간이라 별 모사를 다 쓴다. 다 죽은 척하다 자기 품속에 가지고 다니는 시퍼런 대검으로 쿡 쑤시는 수도 있다. 적을 잡아도 적을 죽일 때까지는 1:1일 때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6.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1 JMS 정명석 목사의 중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1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험난했다고 다들 말한다. 나 역시도 나의 삶의 길이 고달펐고 괴로웠으며 또 다시 걷고 싶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걸으려 해도 불가능한 험난한 삶의 길이었다. 한 때는 너무 어려워서 삶을 포기하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의식주 문제와 환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좌절이 문제였다. 따가운 태양 빛이 얼굴이 그을리도록 내리쬐고, 먹장구름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67년 4월, 나의 고향 하늘이 아니라 이국 땅의 전선의 하늘이다. 말로만 듣던 피비린내, 또 말로만 듣던 전투, 전쟁터, 말로만 듣던 총격전…이제는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그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신음과 고통, 그리고 삶의 소망, 생명의 가치.. 이전 1 2 3 4 5 다음